[삶과 문화] 여명의 지식

입력
2018.12.13 04:40
31면

나는 DMZ 평화공원에서 열린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행사에서 시 낭송을 하고 온 적이 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2년 전 여름. 행사가 끝난 후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리다가, 공원 가장자리 나직한 건물 뒤편으로 발길을 옮겼는데, 철망 우리에 갇혀 풀을 뜯던 꽃사슴 한 마리가 이글거리는 눈망울로 날 바라보았다. 뭘 봐! 그런 눈빛은 아니고, 무슨 이념, 적의, 증오, 경계심을 품은 그런 무장(武裝)의 눈빛은 더더욱 아니고 그냥 멀뚱멀뚱!

그런데 난 그 비무장의 눈빛 멀뚱멀뚱을 못 견디고 어디 갈 길 바쁜 사람처럼 그냥 돌아섰다. 실은 땡볕 때문에 나지막한 건물 속으로 피신했는데, 평소 구경도 못 하던 희귀동물들 사진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었다. 그 비무장의 숲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산다는 산양, 사향노루, 수달, 열목어 등등….여태 말로만 듣던 녀석들. 그렇게 동물 사진을 감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난 반신불수라도 된 것처럼 온몸의 힘이 쭉 빠졌다. 무장해제! 그 순간 난 혼자 중얼거렸다, 평화로 가는 길이 멀고 멀지만, 그 길 위에 무장해제의 징검다리를 놓는 산양, 사향노루, 수달, 열목어들 따라 이제부터 한 걸음씩, 천천히 한 걸음씩 가야지….

하여간 그때 나는 이런 다짐을 하고 왔는데, 올해 초부터 남북관계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왔다. 금방 통일의 문이 열리진 않겠지만, 남북이 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 안 감시초소를 파괴하고 적대와 반목의 상징인 지뢰 제거 작업도 하고 있다. 당연히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걱정도 솔솔 피어난다. DMZ에서 무장이 완전히 해제되고 나면, 식물과 동물이 뛰놀던 낙원을 탐욕스러운 인간들이 ‘개발’을 앞세워 삼켜버리려 하지 않을까. 무려 70년 세월 동안 꽉 막혔던 남과 북의 적대를 해소하는 평화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젠 대자연과의 공생과 평화도 중요하지 않은가.

지구 생명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위기 속에 살아가고 있다. 지난여름 우리는 기후 변화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오래도록 지속된 폭염, 폭우, 태풍 등으로 재앙이라 할 만큼 극심한 몸살을 겪었다. 앞으로 지구 주민에겐 어떤 재앙이 닥칠지 예측할 수 없다. 오늘 기후 변화로 인해 겪는 고통은 인간의 과도한 욕망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 않은가.

오래전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라는 독일의 수도승은 지식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황혼의 지식’과 ‘여명의 지식.’ 눈앞의 피조물을 그것 자체로만 인식하는 앎이 ‘황혼의 지식’이라면, 피조물을 대할 때 그것을 지으신 이 안에서 인식하는 앎은 ‘여명의 지식’이라는 것. 좀 더 풀어보자면, DMZ 안에 살아 있는 생명들을 ‘경제’나 ‘개발’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그것은 황혼의 지식이요, 그 생명들을 공생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여명의 지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황혼의 지식이 눈앞의 자기 이익만 앞세우는 얄팍한 앎을 말하는 것이라면, 여명의 지식은 우주 만물의 공생과 공존을 염두에 두는 통합적 앎을 가리킨다.

이제는 지구별 위에서 그 아름다운 관습이 거의 사라졌지만, 인디언들은 자기가 뜯어먹으려는 식물 한 뿌리, 사냥해 먹으려는 동물에게도 ‘허락’을 구한다고 하지 않던가. 이렇게 허락을 구하는 삶의 태도야말로 인간을 아우르는 지구 생명체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여명의 지식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평화와 통일을 생각하는 우리의 관점을 확장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는 인간의 욕망만 앞세워 그곳을 존재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온 원주민인 동물과 식물들의 ‘생명권’을 해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한다. DMZ는 한반도의 아마존, 즉 우리가 숨쉴 수 있는 허파가 아닌가. 허파 없이 존재할 수 있는 생명체가 있는가.

고진하 목사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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