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광주형 일자리의 한계

입력
2018.12.09 18:00
수정
2018.12.12 10:3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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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크스바겐 자동차 본사는 독일 중북부 니더작센주의 교통 요지 볼프스부르크에 있다. 그곳 생산공장은 1990년대 중반 이래 경기침체로 생산량이 40% 감소하고, 고용 인원도 1만명 정도 줄어드는 위기에 빠졌다. 회사는 공장 해외 이전까지 검토할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노조가 즉각 반발하고 나섰고, 독일 사회에서도 ‘폴크스바겐 만은 독일을 지켜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됐다. 1999년 회사가 한 가지 안을 내놨다. 노조와 독일 사회에 대한 제안이었다.

▦ 골자는 해외 이전을 않는 대신, 임금 수준을 본사 생산직 급여의 80%(5,000마르크)로 줄이는 조건으로 5,000명을 고용할 새 생산공장 설립을 허용해 달라는 것이었다. 노조는 반발했지만, 독일 사회는 환영했다. 노조로서는 임금 하락 위험이 있는 제안이었지만, 사회적으로는 생산기반의 해외 이전을 막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긍정적 측면이 훨씬 컸기 때문이다. 결국 노조도 양보해 새 공장 ‘아우토 5000’이 2001년 설립됐다. 요즘 국내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는 ‘광주형 일자리’의 모델이 된 프로젝트다.

▦ 당초 볼프스부르크 공장에 3,500명, 하노버 공장에 1,500명을 신규 고용키로 했으나 여건이 안 돼 볼프스부르크 공장만 설립됐다. 하지만 아우토 5000은 2002년부터 생산을 시작해 2009년 다시 폴크스바겐으로 편입돼 들어갈 때까지 7년간 성공적으로 존속했다. 폭발적 인기를 모은 ‘투란(Touran)’을 내놓기도 했다. 일각에선 결국 해체돼 본사에 흡수됐다는 점을 들어 아우토 5000을 실패한 프로젝트로 평가한다. 반면 다른 한 편에선 과도기적 기획이지만 독일 자동차 산업과 실업위기를 극복하는데 일조했다는 점에서 성공했다고 본다.

▦ 아우토 5000 추진 당시 독일과 지금 우리의 상황은 비슷한 점이 많다. 실업 상황이 흡사하고, 자동차 산업의 비용 절감(생산성 제고)이 요구되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우토 5000은 기업의 제안이었던 반면, 광주형 일자리는 정치권이 주도했다는 점, 아우토 5000은 유휴설비를 활용했지만 광주형 일자리는 새 생산공장을 세운다는 점 등이 엄연히 다르다. 그런 차이에서 비롯되는 정치적 기대감이나 사업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광주형 일자리 협상을 끝없는 진창 속으로 밀어 넣는 것 같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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