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페이 가맹점 목표 13만곳인데… 1차 신청 1만6000곳뿐

입력
2018.12.10 04:40
수정
2018.12.10 05:3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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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 주도 ‘결제수수료 0’ 시장서 통할까

20일 본격 시행 앞 우려 목소리

[저작권 한국일보]제로페이 개요_김경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제로페이 개요_김경진기자

“자영업 열 명이 시작할 때 아홉은 쓰러집니다. 자영업이 일어설 수 있도록 서울시민이 도와주세요. 제로페이로 결제해주세요.”

서울시 홈페이지에 게시된 ‘제로페이’ 홍보영상 속 문구다. 자영업자 지원을 위해 가맹점 수수료를 대폭 낮춘 결제시스템인 제로페이를 이용해 달라는 일종의 ‘읍소 마케팅’이다. 자영업자의 카드수수료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선의로 시작된, 관(官) 주도의 대안적 결제시스템인 제로페이는 과연 시장에서 통할까.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시가 추진하는 제로페이 사업이 오는 20일 본격 시작된다. 제로페이는 QR코드(고유 정보가 담긴 격자무늬 코드)를 활용한 오프라인 간편결제 방식이다. 고객이 휴대폰 어플리케이션(앱)으로 상점에 비치된 QR코드를 읽어들인 뒤 결제금액을 입력하면 본인 은행계좌에서 실시간으로 상품대금이 점주 통장으로 빠져나가는 구조다. QR코드를 이용한 간편 계좌이체인 셈이다. 다만 오프라인 결제만 가능하고, 송금이나 온라인 결제(추후 검토)는 안 된다.

현재 서울 시내 점포 중 제로페이 가맹점이 되겠다고 신청한 곳은 1만6,000여 곳으로, 서울시가 1차 목표로 설정한 13만 곳에 한참 못 미친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제로페이가 결국 시장에서 통할 거라고 자신한다. 서울시가 내세우는 제로페이의 경쟁력은 크게 두 가지다. 연매출 8억원 이하 가맹점까진 결제 수수료가 0원이라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이 없는 점과, 소비자에겐 체크카드(30%)보다 높은 소득공제 혜택(40%)을 준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제로페이 사용자에게 공용주차장 이용료를 깎아주는 등 부가적 혜택도 제공할 방침이다.

하지만 시장에선 제로페이 확산 가능성에 회의적 목소리가 많다. 신용카드, 간편결제 등과 경쟁이 녹록지 않을 거라는 이유에서다. 당장 신용카드 가맹점은 정부의 카드수수료율 인하와 부가가치세 세액공제 한도 확대 조치로 내년부터 수수료 부담을 대폭 덜게 됐다. 연 매출이 7억원대 후반인 가맹점까지는 실질 수수료율이 0.1%로 떨어진다. 제로페이에 앞서 QR코드 결제 방식을 먼저 선보이며 가맹점 15만개를 모은 카카오페이 역시 오프라인 결제 수수료가 0원이다. 게다가 온라인 결제와 송금도 가능하고, 결제금의 일정 비율을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로 적립해 준다. 추후엔 신용카드도 연동시킬 계획이다. 제로페이에 비해 상품 경쟁력이 뛰어난 것이다.

소득공제 40% 혜택 역시 직원 5인 미만의 소상공인 가맹점에서 결제한 금액에 대해서만 받을 수 있다는 점이 한계다. 국민 10명 중 4명은 소득세를 안 내는 우리나라 상황에선 소득공제 혜택이 소비자에게 큰 매력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제로페이의 지속가능성이다. 제로페이는 서울시 등의 지자체와 정부가 손잡고 가맹점 모집, 마케팅 지원, 혜택 제공 등을 추진하는 관 주도 방식이다. 자영업자 지원을 명분으로 별다를 바 없는 결제시스템을 만들고 여기에 세금을 투입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 정책이 바뀌어 제로페이에 대한 공적 지원이 줄면 사업이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정부 압박에 제로페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계좌이체 수수료를 은행들이 떠안은 상황이라, 은행이 언제까지 비용을 부담할지도 미지수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시장 원리를 무시하고 무작정 수수료만 낮추면 된다는 방식으론 시장에서 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공기업 대표는 “중국은 우리나라에 견줘 카드산업이 늦게 발달한 데다 개인 신용을 평가할 역량이 안돼 계좌이체 방식의 QR결제가 나온 건데 우리나라는 이걸 신기술인양 내세우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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