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장현 전 시장은 왜 보이스피싱을 당했을까

입력
2018.12.08 12:38
수정
2018.12.08 15:50

윤장현 전 시장 보이스피싱 원인과 전말은?

윤 시장 다음주 귀국할지 관심 집중

윤장현 전 광주시장/2018-12-05(한국일보)
윤장현 전 광주시장/2018-12-05(한국일보)

“여린 품성과 누구 의견도 믿지 못하는 독단적인 결정이 빚어낸 비극입니다”

20여년간 윤 전 광주시장과 교류하며 선거캠프에서도 활약했던 50대 인사 A씨는 이번 보이스피싱 사건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윤 전 시장은 남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여린 품성이 이번 사기 사건에 휘말리게 된 원인 중 하나라는 의미다. 윤 전 시장은 지역에서 오랫동안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남모르게 어려운 이웃과 지인들을 남모르게 도와온 것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 다른 원인으로 주변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판단하는 그의 업무스타일을 꼽았다. 이번 사건을 돌아보면 주변 측근들과 한번이라도 의견을 나눴다면 피해를 입지 않았을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윤 전 시장과 임기를 함께 한 측근들조차도 최근까지 사기당한 사실을 모른 정도로 독단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시장을 임기 말까지 보좌했던 한 인사는 “윤 시장의 복심이라 할 정도로 한 선배조차도 사기 사건을 모를 정도였다”며 말했다. 윤 전 시장이 사기꾼에게 거액을 송금하는 과정에도 측근 어느 누구와도 논의하지 않고 자신만의 확신으로 실행한 것이 이번 비극의 진짜 원인이라는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는 각종 의혹과 논란이 끝은 어디인지 윤 전 시장의 보이스피싱 사건에 대한 전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발단

지난해 12월 윤 전 시장은‘권양숙입니다. 딸이 비즈니스 문제로 곤란한 일이 생겼습니다. 5억원을 빌려주시면 곧 갚겠습니다’란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평소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와 인연이 있었던 윤 전 시장은 곧장 전화를 걸었다. 사기범 김모(여ㆍ49ㆍ구속)씨가 경상도 사투리 억양을 사용하는 바람에 윤 전 시장은 권양숙로 여사로 믿고 말았다.

갑작스런 문자를 받은 뒤 전화 통화를 통해 김씨를 권 여사라고 확신한 윤 전 시장은 지난해 12월 말부터 올 1월 초까지 4차례에 걸쳐 모두 4억5,000만원을 송금했다.

◇논란ㆍ의혹

이번 사건은 처음엔 단순 보이스피싱 정도로 알려졌다. 하지만 윤 전 시장의 자금출처를조사하는 과정에서 정치자금법과 선거법 위반 등의 의혹이 제기됐다. 김씨에게 송금한 4억 5,000만원 중 은행 대출금 3억5,000만원을 제외하고 지인에게 밀렸다는 1억원이 차용증과 이자 등이 내역이 없을 경우 위법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또 김씨에 돈을 보낸 시점이 민주당 지방선거 공천논의와 맞물리면서 공천을 받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냐는 의혹이 일었다.

광주지역 시민단체들은 지난달 말 연이어 성명을 내고 “윤 전 시장은 보이스피싱 사건의 전말을 분명히 밝히고 시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며 “수사당국은 단순 보이스피싱이 아니라 정치권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범주의 사건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또 수사과정에서 채용비리도 밝혀졌다. 윤 전 시장은 김씨의 딸(30)과 아들(28)을 각각 지역의 사립 중학교 기간제 교사와 김대중컨벤션센터에 취업을 청탁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취업을 부탁하기 전 전화로 권 여사 인척인 것처럼 ‘1인 2역’을 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혼외자가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도움이 필요하다’고 알렸다. 그런 후 김씨는 혼외자 위탁모 행세까지 하며 윤 전 시장의 집무실까지 찾아가 취업을 청탁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의 아들은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임시직으로 7개월여간 일한 뒤 지난 10월 그만두었고, 딸은 취업 후 결혼해 근무하다 지난 5일 사직했다. 윤 시장은 최근 한 매체와의 통화에서 “인간 노무현의 아픔을 안고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이성이 마비된 듯하다”고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사기범 김 여인은 누구?

윤 전 시장을 속여 돈을 뜯어내고 자녀 취직까지 시킨 보이스피싱범 김씨는 검ㆍ경조사에서 자신을 휴대폰 판매업자로 주장했지만 사실 광주ㆍ전남 선거판에서는 잘 알려진 선거 전문 자원봉사자라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 양향자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서대석 광주서구청장, 강기정 전 의원 등 다수의 선거캠프와 인연을 맺은 것으로 드러났다. 복수의 정계인사들은 김씨가 매우 직선적인 성격에 이것저것 요구가 많아 요주의 인물이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윤시장이 주변 사람들과 보이스피싱 문제를 상의했더라면 김씨에게 사기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말들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향후 일정

검찰과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윤 전 시장은 보이스피싱 피해자에서 피의자 신분이 됐다. 검찰은 윤 전 시장을 상대로 직권남용과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수사 중이다. 검찰은 윤 전 시장에게 소환을 통보한 상태다. 네팔 의료봉사를 위해 해외에 있는 윤 전 시장은 최근 한 매체와의 통화에서 조만간 귀국해 문제가 있는 부분은 소명하고 법적으로 책임질 부분은 책임지겠다고 말해 이르면 다음 주 귀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구 기자 sor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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