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말이 칼이 될 때, 말이 생명선이 될 때

입력
2018.12.08 04:40
27면

‘말’이 문자 그대로 ‘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교실에서 똑똑히 배웠다.

미술시간에 그림 그리기를 하는데 한 남자아이가 스케치북도 크레파스도 꺼내놓지 않은 채 지우개로 책상만 문질러대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아이 자리로 가더니 매끈한 회초리로 책상을 콕콕 찍으며 물었다. 그림 안 그리고 대체 뭐하는 거냐고. 아이가 준비물을 안 가져왔다고 대답하기 무섭게, 그러니까 왜 준비물을 안 챙겼냐는 성마른 다그침이 이어졌다. 아이가 느릿느릿 말했다. “그게, 오늘 미술시간이 들어서 스케치북하고 크레파스 사야 된다고 아버지한테 말씀드렸는데… 아버지가, 안 된대요.” 어린 우리 눈에도 대충 상황이 짐작됐다. 허나 선생님은 거기서 물러서지 않았다. 아들 학용품을 안 사주는 이유가 대체 뭔지 궁금하다며 아이를 몰아세웠다. “아버지가, 어차피 저는, 공부도 못하고, 글렀다고요.” 아이가 물기 맺힌 눈으로 그렇게 말했을 때 반 친구들 중 몇몇은 크게 웃고 몇몇은 손으로 입을 막고는 숨을 죽였다.

바로 그때, 40년이 더 지나도 잊히지 않는 어떤 말이 선생님의 입에서 나왔다. “그 애비, 무식해도 분수는 아는군. 하기야 싹수 노란 잡초는 일찌감치 뽑아내는 게 상책이지. 인간 절대로 안 변하는 법이거든.” 옆자리 짝이 자기 스케치북을 부욱 찢어 책상 위에 올려주었지만 아이는 끝내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울고만 있었다.

반대로 한마디 말이 생명선이 되어주는 상황도 적잖다. 언젠가 생의 끝에 섰던 발길을 극적으로 돌려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를 읽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던 저녁 무렵. 30대 남자가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걸었다. 저기 중간쯤에서 투신하리라. 한편으로 그는 빌었다. 걸어가는 동안 누군가 나를 바라봐 주었으면, 따스한 한 마디 말이라도 건네주었으면…. 천만다행으로 지나가던 여성이 청년의 눈빛 가득한 절망을 읽었다. ‘바람이 더 차가워지기 전에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는 여성의 당부에 청년은 펑펑 눈물을 쏟았다. 그 순간 기적처럼 다시 살아보고 싶은 희망이 솟구쳤다고 그는 회상했다.

얼마 전 ‘골목식당’이라는 TV 프로에 등장한 한 청년이 화제에 올랐다. 늘어진 트레이닝바지에 뒷짐을 지고, 낡은 슬리퍼를 질질 끄는 그의 모습에서는 습성으로 굳어진 나태와 세상사를 우습게 여겨온 건방이 한눈에 읽혔다. 오죽하면 화면을 본 백선생의 첫 일성이 “저거, 뭐야?”였을까. 예상대로 방송 내내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시청자들을 복장 터지게 했다. 기사가 쏟아지고 ‘사람 절대 안 변한다. 괜한 헛고생 말라’는 댓글이 수백 개씩 달렸다. 맞다. 익숙한 삶을 바꾸는 일은 누구에게든 쉽지 않다. 오죽하면 ‘뼈를 갈아 끼우고 태를 빼낸다(환골탈태)’는 비유를 갖다 썼을까. 그 청년 역시 결심하고 미끄러지는 일을 수시로 반복하는 듯했다.

어느 아침, 식당을 급습한 백선생이 호통을 쳤다. “사람들이, 절대로 안 바뀐대.” 모욕에 가까운 댓글들을 그도 이미 읽었을 터. 청년의 낯빛이 하얘지고 입술이 떨렸다. 그리고 백선생의 다음 말이 TV를 보는 내 가슴에 콱 박혔다. “뭔가 보여주고 싶지 않아? 보란 듯이 한번 바뀌고 싶지 않아?” 그 말에 청년이 다시금 어금니를 물었다. 편집의 묘가 작용했겠지만 이후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아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제대로 살고 싶지만 자꾸 흔들리고 삐끗한다. 한 해가 며칠 남지 않은 요즘 같은 날에 유독 우울과 자괴감에 빠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TV를 본 다음날 카드를 여러 장 샀다. 별것 아닐지라도 친구들에게 정다운 안부를 묻고 싶어서였다. 이번 주말에는 책상에 앉아 열 통 넘는 카드를 쓸 예정이다.

지평님 황소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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