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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국내 도착한 켄 리우, 장르소설 편견을 허물다
켄 리우는 20대 때부터 소설을 수많은 잡지에 투고했지만, 오래도록 빛을 보지 못했다. 2010년 가사와 육아 시간을 늘리려고 대형 로펌에서 나와 소설 쓰기에 매달렸다.이듬해 쓴 ‘종이 동물원’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황금가지 제공∙ⓒLisa Tang Liu

중국계 미국인 소설가 켄 리우(42). 공상과학소설(SF)의 양대 노벨상 격인 휴고상, 네뷸러상에 세계환상문학상까지 받은, 뜨거운 이름이다. 그의 중∙단편 대표작 14편을 묶은 ‘종이 동물원’이 나왔다. 그의 세계적 명성에 비하면 책은 국내에 다소 늦게 도착했다. 장르소설이 덜 귀한 대접을 받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리우는 장르소설을 둘러싼 두 가지 해묵은 편견을 허문다. 우선 그의 소설은 저렴하지 않다. 과학기술, 역사, 생명윤리, 철학을 묵직하게 사유해 매끈하게 버무렸다. 그러면서도 난해하지 않다. 소수 마니아가 열광하는 하드코어 풍의 SF가 아니다. ‘첨단’보다는 ‘애수’라는 말이 그의 소설에 어울린다.

리우는 중국 서북부 간쑤성에서 태어나 11세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경계인의 정체성 고민’이라는 이민자 작가의 전형적 틀에 발목 잡히기를 거부하고, 개인사를 지구상에 없는 낯섦으로 빚어냈다. 하버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리우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프로그래머였고, 하버드대학 로스쿨 출신의 조세 전문 변호사였다.

리우의 진짜 꿈은 소설가였다. 2011년에 쓴 단편 ‘종이 동물원’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SF로 탈 수 있는 큰 상은 전부 탔다. 이후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썼다. 문학의 언어, 과학의 언어, 법의 언어에 영어와 중국어가 하나가 된 게 리우의 독특한 소설 언어다.

슬픈 아름다움. ‘종이 동물원’엔 그보다 더 잘 어울릴 만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미국인 아버지와, 그가 카탈로그에서 고른 ‘우편 주문 신부’인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가 주인공이다. 어머니는 어린 ‘나’에게 선물 포장지로 동물을 만들어 줬다. 종이 동물은 살아 움직이는 친구들이었다. ‘나’의 세계가 어머니의 세계보다 커진 뒤로, 어머니가 물려준 피가 싫어진 뒤로, 동물들은 생명도, 볼품도 없는 종이가 됐다.

어머니는 영어를 몰랐다.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몰랐다. ‘나’는 어머니에게 입을 닫았고, 어머니의 세계는 그걸로 닫혔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 어머니의 비밀을 알려 준 건 다시 살아 난 종이 호랑이다. 종이 호랑이가 품고 있었던 편지를 읽는 ‘나’를 따라 눈물을 훔치는 독자가 많을 것 같다.

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장성주 옮김
황금가지 발행∙568쪽∙1만5,800원

“글쓰기가 보람 있는 노고인 것은 오로지 우리 정신이 서로에게 닿을 수 있다는 가능성 덕분이다.” 책에 쓴 리우의 말이다. 그의 노고는 인정받았다. 동북아시아 독자들에게 특히 그렇다. 그는 소명이라고 느끼는가 싶을 정도로 일제 침략사에 천착했다. 중국계이면서도 대만의 목소리를 많이 담았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은 일본군 731 부대의 잔학함을 정면으로 다룬다. 리우의 역사관을 거침 없이 직설한다. 시간 여행 기술이 발명돼 731부대의 만행을 목격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법정에 선다. ‘과거’에 발언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우리는 과거가 침묵을 지킬 거라는 가정 아래 국제법을 운용해 왔습니다. 우리 모두들 망자들의 착취자 노릇을 해 왔습니다. 우리는 말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 보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과거를 죽이려 하는 세력의 목소리는 여전히 크다. “그런 이야기를 떠벌리는 사람들은 그냥 관심을 받고 싶은 거예요. 그 왜, 2차 대전 때 일본군한테 납치당했다고 주장하는 한국인 매춘부들처럼.”

‘태평양 횡단 터널’은 가상의 1930년대가 배경인,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이야기다. 일본 주도로 중국 상하이와 일본 도쿄, 미국 시애틀을 연결하는 해저 터널을 뚫는다. 덕분에 세계는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피하고, 일본은 ‘평화롭게’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한다. 터널 공사장의 인부인 ‘나’에겐 음습한 비밀이 있다. 공사에 동원된 중국 정치범 포로들을 생매장하고 그 이름들을 지워버린 것. 작은 속죄 의식을 치르는 ‘나’는 역사의 이름으로 용서받을 수 있을까.

과거사가 전부는 아니다. 디스토피아를 ‘인문학적으로’ 그린 리우의 솜씨는 탁월하다. ‘모노노아와레’는 소행성 충돌로 멸망한 지구에서 살아 남은 1,021명의 이야기다. 그들을, 결국 인류를 살린 건 타인의 희생이다. 제목은 ‘삶의 모든 것이 덧없게 느껴지는 감정’이라는 뜻의 일본어. “그렇게 가는 거지. 모든 것은 지나가니까.” 그런데도 ‘나’만 앞세운다면, 미래는 없다. 모방, 재현을 뜻하는 라틴어인 ‘시뮬라크럼’엔 인격과 기억을 복제하는 기계가 나온다. “일부일처제를 하는 게 불가능한 천성인” 기계 개발자는 과거 외도한 여성들을 복제해 집단 사이버 섹스를 한다. 그 장면을 목격한 딸은 평생 아버지를 혐오한다. 아버지의 일탈은 치명적 배신일까, 눈감아 줄 수도 있는 유희일까. 실은 그건 중요하지 않다. 리우가 다룬 건 인격 복제 기술의 윤리가 아니라, ‘관계’다. ‘부모는 사랑의 이름으로 자녀를 통제할 수 있다’는 아시아적 가치에 질문을 던진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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