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 참석한 박상기 법무부 장관, 민갑룡 경찰청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 연합뉴스

애당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들 한다. 이렇게 지지부진할 줄 알고 있었다고도 한다. 지금 굴러가는 분위기를 보면서 어떻게 그런 기대감을 가질 수가 있겠냐는 말을 하는 이도 있다. 잠시 잊었던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에 대한 얘기다. “지금 수사권 조정 어떻게 돼 가고 있냐”는 막 밤샘 당직 근무를 마친 노장 경찰의 질문을 듣고, 시계추를 앞뒤로 돌려봤다.

2012년 첫 대선 출마 때부터 문 대통령은 수사권 조정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작년 대선에서도 ‘확고한 의지’라며 핵심 공약으로 내밀었다. 청와대가 손수 나서 2018년, 그러니까 올해부터 당장 시행하겠다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내놓았고, 실제 올해 6월에는 정부안을 만들어 국회에 넘기기까지 했다. “검찰도, 경찰도, 시민사회도 만족할 수 없는 (애매한) 절충안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의미 있는 첫 발을 내디뎠고, 할 일은 한 셈이다. 여론도 당연히 할 일을 한다면서 지지를 보냈다.

그런데 이후가 잠잠하다. 국회 사법개혁특위가 바통을 이어받아 세부 조정안을 마련하고 있는데, 영 지지부진하다. 열매는 내보이지 않은 채 활동기간(연말)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고 반복하는데, 빈손으로 끝날까 민망해 내뱉는 헛기침으로만 들린다. 여기에 전직 대법관이 검찰 청사로 줄 지어 소환되는 등 사법부가 새로운 개혁 1순위로 떠오르면서 수사권 조정이라는 개혁 이슈는 점점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전망은 우울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일까 요즘 검찰 간부나 일선 경찰들을 만나면 ‘수사권 조정’은 한가한 소리 중 하나로 취급 받기 일쑤다. ‘어떻게 돼 가고 있냐’는 질문에 “한 번 알아봐 달라”는 되물음이 오면 그나마 양호. “이미 물 건너 갔는데 갑자기 왜 묻냐”거나 “관심 없으니 딴 얘기 하자”는 말이 오간다. “수사권 조정 이슈 지금 행방불명인데. 언론에서 공개 수배 좀 해달라”는 농담으로 얼버무리는 이도 있다. 이들이 자신이 속한 집단의 현안에 무관심해서일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수사권 조정이 잠시나마 여론 지지를 얻은 건 ‘곪은 환부를 향한 적절한 메스’, 즉 개혁 정당성에 대한 공감에서였다. 각종 비리와 권력 유착의 이면에 자리잡은 비대해진 검찰 힘을 재조정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한 지지다. 객관적 전문가들 역시 ‘수사권을 조정해야 한다면 지금이 바로 그 때다’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고, 여기에 정권의 의지까지 뒷받침됐다. 정부 조정안이 마련되는 등 그나마 한 걸음 나갈 수 있었던 이유다.

물론 쉽지 않겠다는 전망은 시작부터 있었다. 권력 기관인, 집단의 힘이 강한, 검찰과 경찰과 같은 집단에게 메스를 들이대는 일은 성공보다는 실패 확률이 높은 게 사실이다. 수사권을 받기만 하면 된다는 경찰조차 개혁 방안으로 동시에 이뤄지는 자치경찰제 도입 등에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금 당장도 ‘수사권 조정은 사실상 실패’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이들이 많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예전을 반추해본다면, 노무현 정부 당시 성과를 냈던 사법 개혁을 한 번은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출범 직후 대통령과 대법원장 합의로 법조계와 각계 전문가들이 2~3년에 걸친 논의 끝에 국민참여재판 도입과 공판 중심 재판제도 개선 등 일정한 성과물을 내놓았던 기억 말이다. 의도가 순수하고, 개혁 주체가 도덕적으로 정당하고, 열린 논의 구조를 통해 지지 여론을 확보하기만 한다면, 여기에 정권의 의지까지 더해진다면 얼마든지 성공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일말의 기대는 버리고 싶지는 않다. 호랑이를 그리려다 보면 고양이라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마음. 국회로 넘어가 있는 개혁안이 흐지부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기도 하다. 지지율 하락세가 거듭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3년 넘게 임기가 아직 남아 있으니 말이다.

남상욱 사회부 기자 thoth@hankoo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