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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유가족 돕는 ‘따뜻한 친구들’
[저작권 한국일보] 지난달 18일 서울 마포구 창비 서교빌딩에서 열린 ‘2018 세계 자살유가족의 날’ 행사에서 ‘따뜻한 친구들’의 김혜정씨가 자살유가족들을 끌어안으며 위로하고 있다. 한설이PD

‘도대체 왜’라는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이미 떠나고 없어서, 스스로를 괴롭히며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을 되풀이했다. ‘돌이킬 수 있는 순간이 있었는데, 막을 힘이 내게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친 것은 아닐까?’ 생각하다 보면 후회와 원망, 죄책감과 함께 아주 깊은 슬픔이 들이닥쳤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형벌인데, ‘비극적 죽음’이라는 편견 탓에 떳떳하게 슬퍼하지조차 못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자살률 1위 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한 해 1만3,000명, 매일 37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그 한 사람의 선택으로 직접 영향을 받는 ‘자살유가족’은 최소 5명, 많게는 10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살유가족은 사랑을 앗아간 자살의 유혹에 더 취약해진다. 제대로 해소되지 못한 의문, 오롯이 치유 받지 못한 아픔에 잠긴 그들은 일반인보다 자살 위험이 4.5배 높다는 수치(자살 고위험군)로 우리 앞에 떠오른다.

슬픈 비밀을 가슴에 묻고 지내는 그들이 서울 마포구 창비 서교빌딩에 지난달 18일 모였다. 시민모임 ‘자살유가족과 따뜻한 친구들’이 2018세계자살유가족의날(추수감사절 전 주 토요일)을 맞아 초대했다. 희망제작소 국민해결2018이 멍석을 깔고 행정안전부가 뒤에서 도왔다.

[저작권 한국일보] 지난달 18일 서울 마포구 창비 서교빌딩에서 열린 ‘2018 세계 자살유가족의 날’ 행사에서 한 유가족이 하고 싶었던 말을 종이에 적고 있다. 한설이PD

“죽음과 삶 사이에 다리가 있다면 거기를 건너 엄마를 다시 만나고 싶어요”, “나만이 아이를 기억할 유일한 사람이니까, 그래서 살려고 해요”, “10년이 지나도 어제 일 같고 매일 보고 싶어요”, “잊어버리라는 말을 안 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잊어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속내를 털어놓으며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2시간여에 걸쳐 함께 시를 읽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과정이 끝난 뒤 유가족 30여명의 얼굴은 한결 가벼워진 듯 환하게 빛났다.

‘따뜻한 친구들’은 김혜정(53)씨가 이끌고 있다. 김씨는 9년 전 남편을 떠나 보낸 이후 한동안 슬픔에 빠져 허우적댔다. 주변 이웃들이 손을 내밀었고, 서로 마음을 보듬는 시간 끝에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자신이 받은 ‘환대’를 다른 유가족들도 경험했으면 하는 소망을 품고, 자살예방 교육을 받은 뒤 자살예방지도사가 됐다. 그렇게 이웃들과 모임도 만들었다.

“잠수할 때 누군가 물 밖에서 지키고 있다면 물 속으로 들어갈 용기를 낼 수 있잖아요. 또 물 속에 들어갔다 나와야지만 물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거든요.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고통도 내 삶의 일부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어요.” 김씨가 사람들과 함께 상실을 나누는 이유다.

[저작권 한국일보] 지난달 18일 서울 마포구 창비 서교빌딩에서 열린 ‘2018 세계 자살유가족의 날’ 행사에서 유가족들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다. 한설이PD

털어놓는 순간부터 치유가 가능하지만 사회적 눈초리 탓에 유가족은 가족의 죽음을 쉽사리 말하지 못한다. 유학을 갔다거나 사고를 당했다고 주변에 숨기는 일도 많다. 그래서 ‘부끄러운 죽음’이라는 편견부터 깨야 한다고 이들은 강조한다. “자살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전 삶까지 언급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게 화가 났어요. 숨기지 말고 말해야 해요. 보호해 달라고 표현을 해야지 해결책이 나오거든요. 물론 표현을 했을 때 도움 받을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돼 있어야 하고요.”

따뜻한 친구들의 목표는 유가족→지인→제3자로 대화 대상을 넓혀가며 차차 슬픔을 인정하고 궁극적으로는 ‘애도’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슬픔이 분노 억울함 죄책감이 섞인 감정이라면, 애도는 떠난 사람을 기리고 그가 내 삶에서 어떤 존재였는지 추억하는 일이에요. ‘애도’가 가능해야 상실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나갈 수 있죠. 죽음을 지우려 하면 함께했던 삶까지 지워져 버리니까, 죽음을 받아들이고 즐거움과 기쁨처럼 삶에 포용해야 해요. 그래야 계속 살아나갈 수 있습니다.” 김씨의 말을 길게 옮겨놓는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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