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지난해 출판상 14개 휩쓴 고려대 교수
보건분야 신간 ‘우리 몸이 세계라면’으로 귀환
지난 4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승섭 교수. 노동자, 성소수자 등 소외계층 연구에 진력하고 있는 그의 다짐은 "계속해보겠습니다"이다. 서재훈 기자

“음…….”

한 사회의 고통을 반복적으로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엄청난 고통 아니냐는 질문에 여러 기억이 밀려오는 듯 울컥, 눈이 붉어졌다.

“그래도 전 자기 싸움을 하니까 행복합니다. 행복해야죠. 만화 ‘미생’에 그런 말 나오잖아요. 복잡한 현대 사회에 자기 싸움을 하는 사람은 없다고. 전 그걸, 소위 말하는 ‘명문대 정규직 이성애자 남성 교수’라는 아주 좋은 위치에서 하고 있으니 행복하다고, 더 잘하겠다고 말해야겠지요.”

새 책 ‘우리 몸이 세계라면’(동아시아)으로 돌아온 김승섭 고려대 교수를 지난 4일 서울 안암동 연구실에서 만났다. 사회역학의 프리즘으로 삼성전자 백혈병 환자 문제, 공기업 민영화 문제, 동성애ㆍ트랜스젠더 같은 성소수자와 왕따ㆍ차별 문제, 세월호 참사와 쌍용차 해고 문제 등을 다뤘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하 ‘아픔길’)에 이은 책이다.

‘아픔길’은 지난해 최대 화제작이었다. 7만부가 팔렸을 뿐 아니라, 한국일보의 한국출판문화상을 비롯, ‘서점인이 뽑은 올해의 책’ ‘서울대평화통일연구원 선정 평화의 책’ 등 모두 14개의 상을 받았다. 각 언론사들이 꼽은 ‘올해의 저자’ ‘올해의 책’에 빠지지 않았다. 싹쓸이 수준이었다.

그 덕에 김 교수는 올해를 바쁘게 보냈다. 천안함 생존장병 연구,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배우자 연구, 백화점ㆍ면세점 화장품 판매직 연구, 인천 퀴어퍼레이드 참여자 연구, 손해배상ㆍ가압류 피해 노동자 연구 등을 진행했다. 그늘지고 낮은 곳의 목록은 끊이지 않는다.

‘아픔길’에서 김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꽃이 필 것이라는, 열매가 맺힐 것이라는 기대 없이 어떻게 계속 씨앗을 뿌릴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라 표현했다. 이번 책에선 동학 농민군이 모였던 전북 부안의 백산(白山)을 들이밀었다. 뒷동산 수준의 낮고 볼품 없는 산일지라도 아프고 소외된 사람들이 기대어 일어설 수 있는 산이고 싶다는 얘기다. 그래서일까. 이번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장은 책 마지막에 쓴, 책을 통틀어 가장 짧을 한마디다. “계속해보겠습니다.” 결기다.

-‘아픔길’ 이후 바빴다. 어떻게 지냈나

“쉽지 않았다. TV출연, 강연, 기고 요청 같은 것 다 거절했다. 너무 죄송스러운데 그게 ‘아픔길’로 나타날 수 있는 후유증을 예방할 수 있는, 나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라 생각했고, 지금도 잘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서운해하지 않나. 그래도 당신만은 응해주리라 믿었을 텐데.

“맞다. 처음엔 강연 요청 이유를 A4용지 한 장 가득 써오면, 전 거절하는 이유를 3,4장 써서 답하기도 했다. 그러다 나중에 그냥 거절했고. 주례 선생님 통해서도 들어온 것도 거절했다. ‘아픔길’ 이후 절 존경한다는 분들이 늘어나서, 전 그런 사람 아니라고, 하하하, 그런 분들과 거리를 두기 위해 노력했다.”

-그 와중에 올해엔 연구도 많았다.

“문재인 정부고 하니까 제가 연구비를 어디서 많이 받는 줄 아시는 분들이 있다. 제 연구는 대부분 급박한 현실에 대응하는 것이라 연구비 타낼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연구주제가 돈 될 만한 것들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 정부 용역 이런 것도 못하고, 그렇게 올 한 해가 갔다.”

-새 책 ‘우리 몸이 세계라면’은 보건의 역사다.

“5년 전 학부 1학년 1학기 과목 ‘공중보건의 역사’를 어쩌다 맡게 됐다. 학생들에게 우리 공부란 이런 것이다, 자부심을 심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나도 생소해서 겨울방학 때마다 관련 분야 논문을 다 읽고 강의를 준비했다. 지난해엔 그리스 시대, 올해는 일제시대 공부해서 더 보충하는 방식이다.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제 나름대로는 그렇게 한 해 한 해 발전시켜나간 강의다.”

김 교수는 ‘공중보건의 역사’ 강의로 고려대가 최우수 강의에 주는 석탑강의상을 2016년, 2017년 연속으로 받았다. 2018년엔 논문실적으로 석탑연구상을 받았다.

-부담은 없었나. 전작 ‘아픔길’ 평이 너무 좋았는데.

“전혀 부담 없다. 그럴 거라 생각하시는 분들 많은데 사실 제가 다루는 주제 대부분이 다 민감하고 불편한 것들이지 않나. 그러니 ‘아픔길’이 부담스럽다기보다 고맙다. 무대를 마련해줘서. 이제 본격적으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공격 많이 받을텐데.

“뭐, 항상. 에이즈 퍼트리는 하버드 박사, 이런 얘기 듣는다(김 교수는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하하. 그런데 공격보다 책임감이 더 신경 쓰인다. 어디 블로그를 보니까 도서관 사서 분이 온갖 항의를 받아가면서 동성애 관련 강의를 진행한 모양이더라. 그러면서 ‘내가 좋은 책을 하나 읽었다’면서 제 책을 언급했다. 어떤 분은 제 책의 한 구절 ‘혐오는 아무리 우아하게 말해도 혐오다’를 인천 퀴어 퍼레이드에서 외쳤다고 한다. 내가 그런 말을 해놨구나, 내가 좀 더 연구를 잘하고 책을 잘 써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김승섭에게 자기를 풀어놓는 시간, 일탈은 없나.

“저녁에 벽돌깨기 게임 하는 거 정도? 유학 다녀오니 돈이 한 푼도 없었다. 교수 대출 받아 구할 수 있는 집이 (경기) 파주 밖에 없었다. 애도 셋이다. 넉넉하지 않은데다, 아이를 키우며 파주를 오가다 보니 다른 걸 할 겨를이 없다. 술 많이 마시면 다음 날 힘드니까 술 생각 나면 혼자 위스키를 입에 머금고 있다. 그러면 흡수가 빠르니까.”

-범생이 스타일인 건가.

“타고 나길 그렇게 타고났다. 그게 제 한계이기도 하다. 매우 보수적일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다. 급진적 논리나 말이 제 마음에 잘 와 닿지 않는다.”

-연구나 책을 보면 진보적일 것이라 다들 생각한다.

“물론 진보적인 면은 있는데, 난 내가 연구로서 할 수 있는 말만 하자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게 저한테 더 잘 어울리고 편하다.”

-진보는 좀 질러야 제 맛인데.

“제가 책에다 시나 소설 같은 문학을 가져오는 건 그 때문이다. 저도 연구를 하다 보면, 내가 이것보다 조금 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부분들이 있지만, 난 거기에서 말을 멈추고 문학을 끌고 들어간다. 특히나 제 연구는, 말하자면 패배한 자리, 폐허가 된 자리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 자리엔 제가 가진 도구, ‘양적 분석’이 들어설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내가 내 연구로서 말할 수 있는 부분을 넘어섰을 때, 그 때 시나 소설을 인용하는 방식이다.”

-폐허로 많이 밀고 들어갔는데.

“내 전공으로서 그리 들어간 것인데, 그렇게 들어가더라고 결국 안 되는 부분들이 생기더라. 삶이란 그런 것 아니겠나.”

-내년이 안식년이다.

“손해배상 가압류 연구를 마무리 중이다. 내년 1월쯤 발표할 것이다. 그리고 안식년은 하버드대로 간다. 거기서 진행 중인 저임금 이주 노동자 연구에 참여할 것 같다. 그간 연구에 매달리느라 몸이, 마음이 많이 망가져서 좀 쉬려고 한다. 스스로 아슬아슬하다고 느꼈던 적이 많다.”

지난 4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승섭 교수. 서재훈 기자
-폐허를 자주 접해서 상처가 클 것 같다.

“세월호 연구, 성소수자 연구, 그런 연구들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아주 작은 자극에도 더 크게 반응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면서 놀란 적이 많다.”

-상담 같은 게 필요하지 않나.

“여러 번 알아보기도 했다.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넘어갔다. 세월호 연구할 때, 그 때가 ‘아픔길’ 나오던 지난해 9월쯤이었는데 제일 위험했던 것 같다. 주변 학생들에게 나 망가진 것 같다고, 나 좀 도와달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다 같이 울고. 그런데 세월호 참사를 들여다보셨던 분들은 다들 그렇게 힘들어하셨다.”

-앞으로 연구도 계속 그런 문제에 부딪힐 건데.

“어떻게든 잘 버텨내야 한다, 그 생각 뿐이다.”

-대학원생 육성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그게 제 역할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사람이 없으니 제가 이것저것 연구를 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전 ‘외부자’일 뿐이다. 그 문제에 직접 가닿을 수 있는 분들이 해야 한다. 가령, 지금 쌍용차나 손배ㆍ가압류 연구를 진행하는 박주영 같은 분은 노동운동을 오래 하고 시민단체 상근 활동가도 하셨던 분이다.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하길래 내게 오면 공부 하나로 아주 고통스럽게 해드리겠다 해서 같이 하게 됐다. 제가 다양한 연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분의 힘이 크다. 그런 연구자가 탄생한다는 건 한국 사회의 복이라 생각한다. 내년엔 함께 대중서를 쓰기로 했다.”

-공저로?

“전 박사학위에 그런 식의 부대 조건을 건다. 성소수자 문제 연구하는 이혜민 선생에겐 성소수자 건강을 주제로 한 학기 강의하는 걸 조건으로 내걸었다. 강의는 내가 마련해줄 생각이다. 성소수자의 건강 문제가 대학 강단에서 본격 논의되는 건 아마 처음일 것이다. 박주영 선생은 대중서 쓰기였고. 아마 박주영 선생이 다 쓰고 난 지원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런 식으로 우리 연구를 알려야 한다.”

-요즘은 논문 쓰는 기계가 되어버려서 그럴 시간이 없다는 말들을 한다.

“세상이 그렇다는 것과 내가 그렇게 산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 같다. 물론 나도 논문실적 열심히 챙기고, 수업 잘 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 외의 것들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계속 나와서 김승섭이 지워져야 한다?

“그게 중요하다. 제가 상 받고 이름 얻는 게 기쁜 이유는 내가 유명해져서가 아니다. 최소한 김승섭과 함께 공부하고 연구했다고 한다면 뭔지 몰라도 일단 인정해주는 분위기, 그게 중요하다. 나와 함께 연구한 이들도 사회에 나가면 다들 어떤 싸움을 벌어야 하는데, 그 싸움의 종류가 무엇이든 ‘김승섭’이란 이름이 도움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김진주 인턴기자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