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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허동화 한국자수박물관장 뜻 받아
자수, 보자기에 대한 56명 글을 책으로
고 허동화 전 한국자수박물관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독특한 문화유산 우리의 보자기에는 몬드리앙이 있고 풀 끄레도 있다…거기에는 아름다움을 한결 따뜻하게 하고 한결 가깝게 느끼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김춘수 시인이 지난 5월 작고한 허동화(1926~2018) 한국자수박물관장에게 보내는 헌시(獻詩)인 ‘보자기 찬(讚)’의 일부 구절이다. 시의 구절처럼 보자기는 오랜 세월 일상용품으로 사용돼 왔지만 우리 민족 특유의 아름다움과 가치가 배어 있는 문화유산이다.

허 관장은 일찌감치 보자기의 가치를 알아봤다. 소령으로 전역한 허 관장은 1960년대 말부터 보자기를 수집했다. 부인 박영숙씨는 “처음에는 도자기를 수집하려고 했는데 가짜 도자기도 많고 돈도 많이 들어 말렸더니 자수와 보자기를 모으기 시작하더라”고 했다. 단순히 수집에 그치지 않았다. 허 관장은 1976년 한국자수박물관을 열고 국내외에 자수와 보자기를 널리 알리는 데 매진했다. 국내에서뿐 아니라 40년간 11개국에서 55회에 걸쳐 전시회를 개최했다. 정부는 지난 10월 허 관장에게 자수와 보자기 연구에 헌신하며 초창기 규방공예 연구의 기틀을 닦은 업적을 기려 은관 문화훈장을 수여했다.

56명의 문화 예술인들이 한국의 자수와 보자기 문화에 대해 쓴 글을 모은 ‘온 세상을 싸는 보자기’. 허동화 관장이 좋아했던 보자기의 무늬를 활용해 7권의 책을 보자기 싼 것처럼 포장했다.

지난해 한국박물관학회에서는 허 관장의 이 같은 공로를 기념해 그의 망백(望百) 기념 논문집을 마련하기로 했다. 허 관장은 논문에 그치지 말고 자수와 보자기에 대한 각계 인사들의 글을 받아보자고 건의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자수와 보자기에 대한, 56명의 글을 모은 책 ‘온 세상을 싸는 보자기’다. 총 7권으로 구성됐다. 올해 초 암 진단을 받은 허 관장은 출간을 기다리다 출간된 지 하루 만인 5월 24일 눈을 감았다. 박영숙씨는 “잠도 자지 않고, 책을 기다렸다”며 “책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고 전했다. 유족들은 책을 국ㆍ공립 도서관과 박물관 등에 무상으로 배포할 예정이다.

허동화, 박영숙 부부. 한국자수박물관 제공

‘보자기 할배’라 불렸던 그는 떠났지만 유족들이 그가 평생 모은 자수와 보자기 5,000여점을 서울시가 운영하는 공예박물관에 흔쾌히 기증하기로 하면서 자수와 보자기는 문화유산으로 각광받을 것으로 보인다. 박영숙씨는 “기증하면서 본래 운영하던 자수박물관은 문을 닫는다”며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고, 작품으로 잘 보존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서울시가 삼청동 옛 풍문여고 자리에 건립 중인 서울 공예박물관은 2020년 5월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개관하면 허 관장이 기증한 자수와 보자기가 자수직물전시관에 상설로 전시된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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