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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더 레코드]<2> 광주세계선수권ㆍ도쿄올림픽 한국 수영의 희망

국가대표 수영 선수 김서영이 지난 달 26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내년과 내후년 목표를 적은 보드판을 들며 활짝 웃고 있다. 김서영은 내년 광주 세계선수권과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수영에 메달을 안겨 줄 확실한 기대주로 꼽힌다. 진천=신상순 선임기자

-내년 광주 세계선수권 목표는 우승이겠죠?

“일단 제 기록을 경신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어요…”

-도쿄 올림픽에서 시상대 맨 위에 서는 상상을 해봤나요?

“더 중요한 건 제 기록을 깨는 것...”

-세계신기록에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그보다 제 기록을 넘는 것이 우선...”

국가대표 수영 선수 김서영(24ㆍ경북체육회)은 여자 개인혼영 200m에서 한국신기록을 7번(타이기록 1번 포함) 세웠다. 최근 2년 사이 1초89를 단축하며 자신이 갖고 있던 한국신기록을 4번이나 경신했다.

그가 지난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딸 때 세운 기록(2분08초34)은 2016년 리우올림픽, 작년 세계선수권 동메달에 해당한다. 김서영의 실력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 톱클래스라는 뜻이다. 한국 여자 수영의 세계선수권, 올림픽 메달이 막연한 희망 사항만은 아니라는 의미기도 하다.

내년 7월 광주 세계수영선수권, 2020년 도쿄올림픽 메달을 노리는 김서영을 지난 달 26일 진천선수촌에서 만났다. 그가 청소년 대표 선수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 직후였다.

최근 놀라운 상승세를 타고 있기에 김서영 입에서 “광주나 도쿄에서는 세계신기록에 도전해 보겠다”는 화끈한 포부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기록 이야기만 나오면 그는 말을 아꼈다. “내 기록을 깨는 게 중요하다”고만 반복했다. 자신의 한계에 끊임없이 도전하겠다는 말로 들렸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라이벌 오하시 유이를 제치고 우승한 뒤 환호하는 김서영. 연합뉴스

그는 지난 8월 아시안게임과 10월 익산 전국체전(3관왕)을 소화한 뒤 1주일만 쉬고 미국 전훈을 다녀왔다. 연말에도 여행 계획 같은 건 없다. 인터뷰 다음 날부터 경산에서 지옥훈련에 들어간다고 했다. 하루에 한 번 훈련할 때는 7,000~8,000m, 오전과 오후 두 번 할 때는 1만6,000m까지 헤엄친다. 50m 레인을 320번 오가는 거리다. 생각만 해도 진 빠지는 훈련을 버티는 원동력은 바로 ‘기록’이다. 김서영은 “수영 선수들은 0.01초를 다툰다. 땀을 흘린 만큼 결과가 나온다. 목표로 한 기록이 전광판에 찍히는 순간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찰나의 순간을 위해 계속 준비하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서영은 고된 훈련의 고통보다 운동을 못하는 고통이 훨씬 크다는 걸 잘 안다. 그는 “고1 때 어깨를 다쳤다. 스물한 살까지 페이스가 올라갈 만하면 아파서 운동을 할 수 없는 나날이 반복됐다. 꿈도 목표도 너무 멀어 보였다”고 털어놨다. 꾸준한 재활로 완쾌는 아니지만 운동하는 데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 통증을 관리하면서 자신감을 찾자 실력은 늘고 기록은 좋아졌다. 김서영은 “아프지 않고 운동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고 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건 김서영. 진천=신상순 선임기자

개인혼영은 접영-배영-평영-자유형 순서대로 헤엄치는 종목이다. 네 종목에 능해야 해 ‘경영의 꽃’이라 불린다. 선수층이 탄탄한 미국, 호주, 일본 등의 수영 강국이 개인 혼영에서도 강세를 보인다. 현재 이 종목 세계 1인자는 헝가리의 ‘철녀’ 카틴카 호스주(29)다. 아시안게임에서 김서영에 밀려 은메달에 머문 일본의 오하시 유이(23)는 작년 세계선수권 은메달리스트다. 163㎝, 54㎏의 김서영은 경쟁자들에 비해 체격이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기본기가 탄탄하고 영법이 부드럽다. 김인균 경북체육회 감독은 “김서영은 엘리트 선수들도 흉내 내기 힘든 고급 영법을 구사 한다”고 했다.

김서영이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보이자 ‘여자 박태환’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박태환(29)이 평소 옆에서 많은 조언을 해준다고 한다. 그는 “존경하는 태환 오빠와 비교해주시니 영광”이라며 “제가 앞으로 갈 길이 곧 태환 오빠가 잘 걸었던 길이다. 그래서 태환 오빠 한 마디가 더 큰 도움이 된다”고 고마워했다.

수영 꿈나무인 청소년 대표 선수들을 대상으로 강연하고 있는 김서영. 진천=윤태석 기자

인터뷰 내내 침착하던 그는 한국 여자 선수 ‘최초’로 세계선수권, 올림픽 입상에 도전하는 의미를 묻자 눈을 반짝였다. 김서영은 “최초라는 말이 참 멋있다”며 “한국은 여자 수영 선수들이 목표를 높게 잡을 수 없는 환경이다. 내가 좋은 결과를 내서 그 후배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날 꿈나무 선수들 강연에 선뜻 응한 것도 같은 이유다.

인터뷰 말미, 검정색 보드판에 내년과 내후년 목표를 써 달라고 했다.

‘광주, 도쿄까지 포기하지 말자’

역시 소박한 문구였다. 그러나 행간에 담긴 그의 꿈은 결코 소박해 보이지 않았다.

김서영 한국신기록 경신 추이 및 세계선수권 기록. 그래픽=송정근 기자

진천=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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