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주도적 개입” 첫 前 대법관 영장

입력
2018.12.03 20:0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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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대ㆍ고영한 구속영장

전범기업 대리 김앤장 측과 회동한 양승태… 검찰 소환 임박

지난달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는 박병대 전 대법관. 고영권 기자
지난달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는 박병대 전 대법관. 고영권 기자

검찰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관 두 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건 이들이 법원행정처장으로서 사법농단 의혹에 전방위적으로 직접 개입한 정황이 수사를 통해 다수 드러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3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 검사)은 이미 구속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받고 있는 범죄 혐의가 단순히 개인 결정에 따른 게 아니라, 박병대ㆍ고영한 전 대법관 지시와 감독 하에 벌어진 일로 보고 있다. 박 전 대법관은 2014년2월부터 2016년2월까지, 고 전 대법관은 후임으로 2017년 5월까지 행정처장으로 지냈다. 검찰 관계자는 “임 전 차장 상급자로서 그 이상의 책임을 지우는 게 반드시 필요했다”고 말했다.

박 전 대법관은 혐의가 30여 개에 달하는 임 전 차장과 대부분 공범으로 지목된 정도로 재판 개입ㆍ사법행정권 남용ㆍ판사 인사불이익 등 사법농단 의혹 대부분에 걸쳐 주도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포착됐다. 개입한 재판만 해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낸 민사소송 △전교조 법외노조 관련 행정소송 △옛 통합진보당 소송 등 다수다. 2015년 한 부산고법 판사 비위 사실을 알고도 징계 절차를 밟지 않는 식으로 사법행정권을 남용하고, 사법부에 비판적인 판사에 대해 허위 정보로 인사불이익을 주는 식의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을 보고 받아 승인한 혐의도 있다. 혐의가 방대한데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실무에서 알아서 한 일’이라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한 점이 영장 청구 배경으로도 작용했다는 평가다.

고 전 대법관은 2016년 문모 판사가 연루된 부산 지역 건설업자 뇌물 사건 당시 비위 의혹을 무마 하기 위해 부산고등법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재판이 정상적으로 보이도록 변론을 재개하라”는 식으로 재판에 직접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고 전 대법관도 범죄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헌법재판소 내부 사건 정보 수집 △정운호 게이트 수사 대응 △판사 사찰 지시 등 혐의를 두루 받고 있다.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의 영장청구서는 A4용지로 각각 158페이지와 108페이지에 달할 정도다.

검찰은 강제징용 재판과 관련해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015년 5월부터 2016년 10월 사이 미쓰비시 등 일제 전범 기업의 소송대리인인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한모 변호사와 세 차례 회동을 갖고, 사건 진행 과정을 논의한 정황도 포착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한 변호사와 소송을 전원합의체에 넘기겠다는 청와대 방침, 이를 위해 외교부가 의견서 제출하는 방식 등을 논의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를 확인하고자 지난달 12일 한 변호사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검찰은, 이날 법원에 제출한 박 전 대법관의 영장 청구서에도 김앤장 측과 비밀리에 접촉한 혐의를 넣었다. 하지만 검찰은 소송대리인으로서의 역할 등을 고려해 김앤장 측을 공범이라고 판단하진 않았다. 검찰은 징용소송을 둘러싼 재판거래 의혹 등 사법농단 의혹의 최종 책임자를 양 전 대법원장으로 지목하고, 이달 중 피의자 신분으로 그를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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