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임금격차 해소, 대승적 접근을

입력
2018.12.03 04:40
30면

정규직만 위한 ‘나홀로 고임금’ 대기업,

日처럼 중소기업 지불능력도 감안해야

대기업노조, 중소업체ㆍ비정규직 고려를

우리 사회는 자본소득 대 노동소득의 격차와 자산 격차 뿐만 아니라 노동 내부의 격차로 인해 양극화가 날로 확대돼 왔다. 500인 이상 사업체 대비 30인 미만 사업체의 임금은 1980년대 초반에는 95%에 달했으나, 30여년이 지난 최근에는 50% 내외에 불과하다. 대기업 유노조 정규직으로 주로 이루어진 1차 노동시장과 중소기업 무노조 비정규직으로 주로 이루어진 2차 노동시장은 완전히 다른 세계라고 말할 정도다.

이렇듯 외부에 광범한 저임금 노동시장이 형성돼 있을 경우 대기업은 아웃소싱을 확대해서 비용을 절감하려고 한다. 실제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들은 아웃소싱을 크게 확대해왔으며, 이후 하도급 거래에서 때로는 불공정한 방법으로 단가 인하까지 강제하며 중소기업들의 임금 지불능력을 제약했다. 또한 원청기업의 압박 속에서도 이익을 남기기 위해 중기업도 소기업으로 재하청을 확대하게 되고, 이러한 연쇄적 과정을 통해 대기업에서 중기업, 소기업으로 일자리가 하향 이동해왔다. 따라서 대ㆍ중소기업 간에 임금격차가 축소되지 않으면 고용의 질 악화는 피하기 어렵다.

그런데, 연대 원리를 핵심으로 하는 노동운동은 이처럼 임금격차가 확대되는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 대기업 노조들은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까지 고려한 노조활동이 미약했으며,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대기업 노조 이기주의’라고 비난해왔다. 그렇지만 1980년 전두환 정권이 기업별 노조를 강제한 이후 우리나라는 산별 노조에 불리한 법제도로 인해 노조의 관심이 기업 내로 국한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렇다고 대기업 노조의 전략과 행태가 옳았다는 것은 아니다. 노동운동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극복하고자 했던 80년대 저항문화의 산물인 ‘임금 극대화 전략’에 머물러 있다. 90년대까지는 대기업 노조의 선도 투쟁이 중소기업 노조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으나, 이제 중소기업들의 지불능력 제약으로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따라서 이제 임금 극대화 전략을 명시적으로 ‘임금 평준화 전략’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대기업 노조는 물론 노동운동 전반에 대한 비판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운동이 전략을 일신해 연대 임금을 실천하면 임금격차는 줄어들 수 있을까? 손바닥은 마주 쳐야 소리가 난다. 우리나라 사용자들은 고도 성장 과정에서 정부가 억압적 노동정책을 폈기 때문에 역시 기업 밖의 사정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대기업 정규직의 충성도를 확보하기 위해 ‘나홀로 고임금’을 아무 주저 없이 실행했다. 대기업들이 이러한 행태를 지속하는 한 노동운동의 임금 평준화 전략만으로는 양극화를 결코 극복할 수 없다.

일본은 우리와 같은 기업별 노사관계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지만, 산별교섭이 일반적인 유럽만큼 임금격차가 적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을 유지하는 핵심은 기업들의 공동행동이다. 과거에는 철강업체들이, 그리고 최근 20여년 간은 도요타 자동차가 본보기가 되어 임금인상률을 결정하면 다른 대기업과 중소기업들, 그리고 공무원까지 이를 참조하여 결정한다. 거꾸로 이를 알고 있는 도요타 자동차는 막대한 이윤을 올리는 해에도 중소기업들의 지불능력을 감안해 결코 임금을 많이 올리지 않았다.

이 같은 기업들 간의 조정 행동으로 인해 대졸 초임에서 일본은 대ㆍ중소기업 간에 10% 이상 차이가 나지 않는 반면, 우리나라는 초대형 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가 무려 3배에 이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년들에게 눈높이를 맞춰서 중소기업에 취업하라고 하는 말이 받아들여지겠는가? 대ㆍ중소기업간의 임금격차는 단시일에 좁혀지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중소기업에 취업하더라도 앞으로는 격차가 줄어들어 일할 만한 곳이 될 것이라는 비전이다. 대기업들과 노동운동, 그리고 정부는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도 임금격차를 축소하기 위한 행동에 즉각 나서야 한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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