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석학 칼럼] 당신은 사우디産 석유를 구매할 것인가

입력
2018.12.0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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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왕실에 비판적 목소리를 냈던 재미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 이후 사실상 사우디의 지도자 역할을 하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게 관심이 집중돼 왔다. 그가 이번 사건의 배후로 의심받고 있기 때문이다.

카슈끄지는 10월 2일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 총영사관을 방문했다가 사우디 ‘암살조’에게 살해됐다. 처음에 사우디 당국자들은 카슈끄지가 무사히 영사관을 떠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터키 정부가 살인 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밝히자 마침내 그의 죽음이 의도하지 않은 싸움의 결과라고 주장하면서 사망 사실을 인정했다. 사우디 검찰은 터키 관료들이 미 중앙정보국(CIA) 지나 해스펠 국장에게 카슈끄지의 사망 소식을 전한 후에야 카슈끄지 사망이 계획적인 것이었다고 말했다. 터키 검찰에 따르면, 카슈끄지는 총영사관에 들어가자마자 목이 졸려 살해되고 시신은 토막 처리됐다.

독일은 카슈끄지 피살 이후 대 사우디 무기 판매를 중단하고 동맹국에도 같은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 등 여러 나라 관료들이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주요 투자회의에서 탈퇴했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 최고경영자 등 많은 기업 임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카슈끄지 피살 사건에 대한 서구사회의 강력한 대응은 사우디가 주도하는 예멘 내전의 희생자들에게 보여준 상대적 무관심과는 정반대다. 사우디가 지원하는 예멘 정부와 이란이 지원하는 후티 반군이 2015년부터 충돌하면서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했다. 사우디 공습으로 학교 버스가 폭파당해 어린이 등 수천 명의 민간인이 숨지기도 했다. 예멘을 휩쓸고 있는 광범위한 기근으로 죽어가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예멘의 기근은 국경 봉쇄, 수입 제한, 공무원 급여 삭감 등 사우디가 취한 여러 행동의 결과이기도 하다. 영국 런던경제대(LSE) 마사 먼디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연합군의 공습은 상대방 점령지역에서 이뤄지는 식량 생산과 분배를 타깃으로 한다. 카슈끄지는 예멘 어린이들의 비참한 죽음을 보도했고, 사우디가 전쟁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도덕적 고지를 점령 할 수는 없다고 지적해왔다.

지난달 마크 로우콕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 사무차장은 현재 유엔구호기관의 긴급 식량지원에 의존하는 예멘인들이 약 800만 명이며, 전체 인구의 절반인 1,400만 명이 생사를 가를 식량공급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보고했다. 그는 예멘에 닥쳐올 기근에 대해 “평생 이런 종류의 구호활동을 해온 사람들이 직무수행 과정에서 만났던 어떤 기근보다 엄청난 규모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엔 식량원조에도 불구하고 예멘에서 찍힌 사진들에는 뼈만 앙상한 채 굶어 죽어가는 어린이들이 등장한다.

예멘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메키아 마디는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카슈끄지 피살 사건이 기근과 내전으로 고통 받는 수백만 예멘 어린이들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사우디 출신인 카슈끄지가 미국의 유력지 워싱턴포스트 기자였다는 사실이 그의 죽음에 대한 높은 관심을 유도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의 사망은 ‘식별할 수 있는 희생자 효과(identifiable victim effect)’의 한 예이기도 하다. 우리가 주목할만한 개인의 희생은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행동에 나서도록 한다. 이런 ‘정신적 마비(Psychic numbing)’ 현상에 대한 선도적 연구자 폴 슬로빅은 테레사 수녀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했다. “내가 대중을 보면 결코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한 사람을 보면 행동할 것이다.”

‘정신적 마비’가 우리 본성의 일부인 정서적 반응일지는 몰라도, 100만 명이 죽는 것이 한 번의 죽음보다 훨씬 더 큰 비극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의 감정이 어떤 자극을 가할지라도, 우리는 공공정책과 기업의 의사결정에서 숫자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이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아마 카슈끄지의 피살은 사우디 정권의 다른 야만적 살인 행위에 대해 우리 눈을 뜨게 할 것이다. 사우디는 수십 년 동안, 자국 국민에게 이슬람 근본주의를 세뇌하기 위해 석유로 번 돈을 써왔다. 사우디는 자국 내 이데올로기 확산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나라의 관용적이고 온건한 이슬람 공동체를 근본주의자로 변모시키도록 고안된 선전에도 수십억 달러를 지출했다. 사우디는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자금을 대부분 제공한 것으로 믿어지며, 이라크에 있는 알카에다의 외국인 전투원 중 상당수가 사우디 출신이다.

사우디에 대한 무기판매 중지는 첫 단계 일뿐이다. 사우디 왕실의 권력을 줄이려면 사우디에서 생산된 석유 구입을 중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석유산업의 투명성이 필요하다. 우리는 전세계 주요 석유회사가 사우디에서 유통되는 석유 소매제품의 비율을 대중에게 공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구매를 결정한 제품이 사우디산(産)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카슈끄지의 죽음도 헛되지 않을 것이다.

피터 싱어 미국 프린스턴대 생명윤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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