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KT 화재는 축복이다

입력
2018.12.01 04:40
27면

통신 장애를 겪으며, 삶의 너무 많은 부분들이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에 얽매여 있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을 통해서 세상을 만나고 스마트폰에 의지한 채로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삶의 흔적은 고스란히 스마트폰에 남겨진다. 보다 생산적이고 편리한 삶을 위해 만들어진 스마트폰이 언제부터인가 우리 삶의 족쇄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통신 장애가 걷히면서 순간의 깨달음은 모두 잊어 버리고 다시 스마트폰과 함께 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토요일에 강의가 있어 서대문구에 위치한 학교에 머물렀던 반나절 동안 전화도 문자도 두절되고 이메일 확인도 불가능했다. 물리적으로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했지만 주변과 격리된 섬에 갇힌 느낌이었다. 어느덧 삶의 많은 부분이 스마트폰이 만들어 낸 가상의 공간 속에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달았다. 때론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외출해 불편함을 겪은 적은 있지만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도 주변과 소통이 불가능했던 경험은 또 달랐다.

점심 식사를 위해 동료 교수들과 식당에 가서는 현금 결제만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현금인출기를 찾았지만 일부 현금인출기는 작동되지 않았다. 신용카드 결제가 불가능해 발길을 돌리는 식당 손님들의 불편함보다는 찾아온 손님을 돌려보내야 하는 식당 주인들의 상실감이 더 커 보였다. 그리고 귀가 길에 시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를 피해 막히지 않는 길로 가려고 했지만 내비게이션은 작동되지 않았다.

운전 중에 통신 장애 지역을 벗어나는 순간, 자유를 얻은 듯 했다. 그리고 신호대기 중에 확인한 딸내미의 문자는 갇혀있던 섬에서 탈출해 일상으로 돌아온 아비를 환영해 주는 메시지처럼 따뜻하게 느껴졌다. 당연하게 여겨지던 일상들이 더 없이 소중하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평소에는 식사를 하거나 회의 도중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찾아 헤매었지만, 통신 장애를 경험한 시간 동안에는 마주하고 있는 무엇인가에 보다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눈 앞에 다가온 5세대 이동통신의 상용화를 기반으로 만물이 연결되는 초연결 사회가 열리면 우리는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스마트폰에 삶의 더 많은 부분을 의지하게 될 것이다. 또한 통신 장애는 단지 심리적 불편함이 아닌 삶의 위협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세상을 배우고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스마트폰이 만들어 놓은 가상의 공간에서 관계를 맺으며 삶을 살아갈 것이다. 또한 인간의 개입이 최소화되고 인간의 통제 밖에서 작동하는 기제가 늘어나면서 통신 장애의 파급효과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설 것이다.

생산, 물류, 금융, 공공서비스 등 사회 각 영역의 마비를 초래할 것이며, 국방, 치안, 의료서비스 분야의 마비는 사회 구성원의 생명까지도 위협할 수 있는 끔찍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5세대 이동통신과 함께 다가올 장미빛 미래만을 펼쳐 보일 것이 아니라, 5세대 이동통신이 드리울 그림자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어야 한다. 물론 이번 통신 장애 때문에 경제적 피해를 입은 상인과 일상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던 시민들을 떠올리면 안타깝지만, 5세대 상용화를 앞둔 시점에서 더 치명적인 피해를 입지 않고 우리의 준비 상황을 체계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다행스럽다.

이동통신 시장의 치열한 경쟁구도, 통신비 인하에 대한 시장의 압박, 서둘러 5세대 이동통신을 상용화하는 과정에서의 필요한 자금 조달 등을 고려하면 당장 피해가 발생하지 않고 성과가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투자와 관리가 소홀해 질 수 밖에 없다. 통신 재난을 방지하고자 하는 노력은 비용이 아닌 생존과 성장을 위한 투자임을 이동통신사들은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도 체계적인 통신재난 관리를 위해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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