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병 테러가 ‘검찰 사법농단 수사 탓’이라는 법원행정처장

입력
2018.11.28 17:08
수정
2018.11.29 00:22
8면

안철상 “환자 해부 바람직 안 해” 검찰권 남용 비난

“수사 장기화, 법원행정처 때문인데…” 비판 목소리

28일 오전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의원들의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오전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의원들의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별조사단 단장으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대한 사법부 차원의 세 번째 조사를 이끌었던 안철상 대법원 법원행정처장이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에 대해 검찰권 남용이라는 취지로 28일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발언의 맥락상 사법농단 수사 장기화가 전날 화염병 테러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본다는 취지로 읽혀 적지 않은 논란이 야기될 전망이다.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이날 오전 출근하면서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한 화염병 투척이 사법불신에 근거한 사건이라고 생각하냐’는 기자들 질문에 “명의는 환부를 정확하게 지적해서 단기간 내에 수술해 환자를 살리는 것이다. 아무리 병소를 많이 찾는다 하더라도 해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안 처장이 ‘명의’를 거론하며 언급한 사례가 평소 검찰이 수사방식 개선의 방향으로 강조해온 ‘외과수술식’ 수사를 지칭한다는 점에서 검찰을 겨냥한 작심 비판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검찰은 과거 표적ㆍ저인망식ㆍ먼지털이식 수사로 대표되는 특수수사 관행을 반성하며 ‘환부만을 정확히 도려내, 사람을 살리는’ 외과수술식 수사를 하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하게 밝혀왔다.

하지만 지난 6월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된 후 법원에서는 ‘검찰이 나쁜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전직 대법관 4명을 비롯한 현직 판사 50명 이상이 소환돼 줄줄이 조사를 받는 ‘저인망식’ 수사가 이어지고 있는 데 대한 불만이다. 이날 안 처장 발언 역시 같은 맥락으로, 문맥상 사법불신을 증폭시키면서 화염병 테러와 같은 극단적 행태로 이어졌다는 지적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안 처장 발언에 대해 본말이 전도됐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검찰 한 관계자는 “법원행정처가 문건을 제대로 제출하지 않고 압수수색 영장도 줄줄이 기각되면서 결과적으로 수사가 장기화된 것 아니냐”며 “수사 협조만 잘했다면 빠르게 환부를 도려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자칫 검찰의 잘못된 수사로 인해 사법불신이 커져 테러 사건까지 발생했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며 “국민 정서와 매우 동떨어진 상황인식을 갖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안 처장은 이날 ‘테러 사건에 대해 입장을 표명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심판에 대한 존중이 무너지면 게임은 종결될 수 없고 우리 사회는 평화를 이룰 수 없다”고 답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오후 화염병 테러 사건과 관련해 “일선 법관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매우 안타깝고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해야 하는 법관이나 직원들에게 위해가 가해질 수 있다는 것은 법치주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중대한 일”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과 관련해 사과 뜻을 전하기 위해 방문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민갑룡 경찰청장을 면담한 자리에서다. 민 청장은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하는데 미흡해서 국민 심려를 끼쳐 매우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한편 경찰은 김명수 대법원장 출근 차량에 화염병을 던진 남모(74)씨의 강원 홍천군 자택과 농성장 등을 압수수색해 남씨의 휴대폰, 빈 시너 용기, 소송 자료 등을 확보했고, 검찰은 남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남씨는 친환경 인증 관련 소송 패소에 불만을 품고, 전날 오전 9시8분쯤 대법원 앞에 정차한 김 대법원장의 출근길 승용차에 시너가 든 500㎖ 페트병에 불을 붙여 던진 혐의를 받고 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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