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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위기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각종 경기지표가 내리막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경기흐름을 보여 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6개월 연속, 앞으로의 경기를 예측하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도 4개월째 흐림이다. 고용쇼크나 주가폭락 등은 진정되었지만,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보도가 먹구름을 추가했다.

이런 경기흐름 탓에 주요 기관들이 올해 성장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내년은 더 우울하게 보고 있다. 위기론자들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 경제가 올해 2.7%로 세계 경제 평균 3.7%보다 낮게 성장하고, 내년에는 그 격차가 벌어질 것으로 보는 점을 주목한다.

경제지표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위기 수준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보기에 따라서는 여전히 우리 경제는 건실한 흐름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으로 시장경제질서가 자리 잡고 있고, 경제규모도 세계 10위권이다. 타당한 비교가 되려면, G20과 OECD 모두의 회원국인 미국, 일본 등 G7과 호주, 멕시코, 터키 등 10개 나라와 견주어야 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이를 G7플러스라고 한다면, 이 중 세계 경제 성장률 평균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의 성장률은 터키, 호주, 미국에 이어 4위이고, 내년에는 2위로 복귀한다. 실업률의 경우 G7플러스 11개 나라 중 올해 네 번째로 낮다. 체감지수와는 별개로 글로벌 기준으로는 무난한 흐름인 것이다. IMF는 G7플러스 국가의 경우 2% 이상 성장률이면 좋은 성적으로 평가한다.

한국 경제가 위기인 이유는 단기적인 지표보다는 지속적으로 아주 오랫동안 활력을 잃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심지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처럼 백약이 무효인 긴 경기침체의 초입에 있을 수도 있다. 일본은 생산가능인구 감소라는 고령화 충격 속에서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하락하고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오는 여파로 1980년대 후반부터 오랫동안 비틀거렸다. 지금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풍경과 정확하게 데자뷰이다. 미국의 칼끝이 중국을 겨누고 있지만, 미중 갈등의 영향이 중국 못지않게 심각하다는 점은 일본 상황과 다르지 않다.

구조적 장기 저성장 시기가 앞에 와 있음을 인정한다면 과거만큼의 경기지표를 만들어야 한다는 시장의 아우성이나 정치적 압력에 이끌려서는 안 된다. 일본이 경기 부양을 위해 산간벽지까지 도로를 건설했지만, 원했던 결과는 얻지 못하고, 정부 부채가 GDP의 250%에 가까운 부채대국으로 전락한 점을 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기업의 어려움을 덜어준다고 금리를 내린 결과가 버블경제로 귀결되었던 점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의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경쟁력을 잃은 기업은 신속하게 구조 개혁해야 한다는 점이다. 버블경제가 붕괴되면서 짐덩어리가 된 건설, 유통, 부동산업 등을 빠르게 도태시키지 못한 일본의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바라는 혁신기업의 창업이나 성장도 이러한 구조조정의 기반 위에서 싹틀 수 있기 때문이다.

재정 여력은 부족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데 집중 투입해야 한다. 일자리를 잃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보호해 주어야만 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최소화되고, 구조조정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원의 낭비를 피하면서 효율적으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려면 긴 안목에서 계획을 수립하고 국민적 컨센서스를 확보해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일본이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 1996년 이전 이미 마이너스 성장과 1% 이하의 미미한 성장세로 돌아선 것에 비하면 우리에게는 아직도 기회와 가능성이 있다. 하기에 따라서는 일본과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될 수도 있다. 2기 경제팀은 서두르지 말고 멀리 내다보면서, 경제가 소프트랜딩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 바란다.

최광해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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