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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시대의 마이너리티] <19> 비(非) 음주자 
[저작권 한국일보] 건강 상 이유로 음주를 하지 않은 한 여성이 술자리에서 테이블 밑으로 술잔에 물을 채우고 있다. 이한호 기자

‘부어라, 마셔라’ 식 음주 문화가 오랜 기간 뿌리내려온 한국 사회에서 술을 못하거나 안하는 비(非)음주자들이 일상 생활에서 느끼는 음주의 심각성은 음주자들이 생각하는 그 이상이다. 이들은 어느 하나가 바뀌어서 될 문제가 아닌 만큼 음주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총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호소한다.

26일 국세청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국민 1명 당 연간 알코올 소비량은 8.7ℓ에 달한다. 이는 소주로는 115병(360㎖, 21도 기준), 맥주로는 348캔(500㎖, 5도 기준) 정도 된다. 평생 알코올로 인한 의존ㆍ남용 증상을 보이는 ‘알코올 사용장애 추정 환자 수’는 139만명(평생 유병률 12.2%)이라는 조사 결과(보건복지부ㆍ2016 정신질환 실태조사)도 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고, 중독자가 상당수인 한국에서 비음주자들이 느끼는 가장 큰 문제는 무리한 음주의 위험성이 얼마나 큰지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한보건협회에 따르면 2006년부터 10년 간 폭음ㆍ음주 후 교통사고 등 음주로 인해 숨진 대학생은 22명에 달했고, 통계청의 지난해 사망원인 통계를 보면 알코올성 간 질환 등 알코올 관련 사망자 수는 총 4,809명을 기록했다. 인구 10만명당 알코올로 인한 사망자는 주로 한창 일할 나이인 30대(2.7명)부터 급증해 50대(22.8명)에 가장 많았다.

비음주자들은 정부 차원의 음주 가이드라인을 대학가와 직장에 적극적으로 배포하고, 음주 위험 인구 현황과 실태도 명확히 분석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술을 마시면 호흡곤란 등 증세가 나타나기도 하는 직장인 최은우(29)씨는 “주량은 사람마다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적정량’의 기준을 정해주지 않으면 위험 수준을 금세 넘나들게 된다”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적정 음주량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실 보건복지부는 국민의 절주 실천을 돕기 위해 지난 13일 술 한 잔에 담긴 순 알코올 함량(g)을 확인할 수 있는 ‘표준잔’을 제시(소주ㆍ맥주 1잔 당 알코올 함량 7g)하는 등 절주를 위한 정책 마련에 나섰지만, 한국 사회에 고착화된 음주 문화를 바꾸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음주 문화 개선을 바라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음주운전뿐만 아니라 음주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 사고를 강력하게 처벌해 술에 관대하고 강권하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주점들의 술 파는 시간을 일정 부분 제한해달라” “근로기준법에 음주 강권 금지 문구를 명문화 해달라”는 주장까지도 나온다.

‘술을 강요한 사람도 처벌한다’는 내용의 법안이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데에도 비음주자들은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 최근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는 억지로 술을 권하면 폭력으로 처벌하는 주류 음용 강요 처벌법 등 음주 관련 7대 정책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종교적 신념에 따라 술을 마시지 않는 박수현(28)씨는 “한국 사회에선 술을 권하는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해당 행위가 ‘강권’이라는 점을 알게 하기 위해서 법적 처벌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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