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 레트로 열풍 이유는

입력
2018.11.28 04:00
수정
2018.11.28 08:58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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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융위기 후 본격화

과거 추억들에서 위로 받아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 포스터.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 포스터.
롯데제과 ‘죠ㆍ크ㆍ박’ 패키지.
롯데제과 ‘죠ㆍ크ㆍ박’ 패키지.
대유위니아 '딤채쿡 레트로'
대유위니아 '딤채쿡 레트로'
대우전자 '더 클래식 냉장고'
대우전자 '더 클래식 냉장고'

우리나라의 레트로 열풍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본격화했다. 경기침체로 살림살이가 팍팍해지자 과거의 추억들에서 위로를 얻으려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기업들은 가요, 영화, 광고 등 대중문화를 비롯해 가전제품, 식품, 게임 등에서도 다양한 콘텐츠와 제품을 쏟아내면서 레트로 열풍을 부채질하고 있다.

레트로는 회상, 회고, 추억을 뜻하는 ‘레트로스펙트(retrospect)’의 줄임말이다. 2000년대 진행된 소비행동 심리학 연구에선 과거와 연관된 감정인 이른바 ‘노스탤지어’가 소비 심리를 끌어내는 데 매우 효과적인 도구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슬픔과 상실감을 겪을 때 과거 소중한 추억들을 떠올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다양한 감정들을 현재를 벗어나는 ‘해독제’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실제 대중문화에서 레트로 콘텐츠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다. 2012년 개봉해 큰 흥행을 거둔 ‘건축학개론’은 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배경음악으로 삼았다. 이밖에 헤어 무스, CD 플레이어, 무선 호출기 삐삐 등 당시 문화의 아이콘들을 등장시키며 관객 호응을 얻어냈다.

2012년엔 또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응답하라 1997은 HOT와 젝스키스로 대변되는 1990년대를 배경으로 친구들 사이의 감성을 다룬 드라마다. 후속작인 ‘응답하라 1988’에서 여자 주인공이 입고 나왔던 터틀넥 니트와 통이 넉넉한 연한 색 청바지, 체크무늬 코트 등은 최근 다시 유행을 타며 패션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1990년대 개봉됐던 영화 ‘러브레터’ ‘레옹’ ‘8월의 크리스마스’ 등이 잇따라 재개봉 되며 관객들을 끌어 모으는 사례도 있다.

주목할 점은 이런 레트로 콘텐츠 대부분이 1980~90년대 문화를 주요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소비 여력을 갖춘 30~40대가 청소년기를 보냈던 시절이 1980~90년대였다는 점과, 기업에서 레트로 콘텐츠를 만드는 주요 제작자들도 30~40대가 많다는 점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각에선 레트로 열풍을 비판하기도 한다. 주류 대중문화는 과거에서 벗어나 창조적으로 진화해야 하는데, 레트로 열풍은 과거 콘텐츠를 재소비하는 회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가상현실(VR), 무인화 등 눈부신 기술 발전 속에 오히려 직접 손으로 만지고 느끼던 과거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경향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대용량 저장과 순간 재생이 가능한 CD나 USB를 두고도, 분당 33 회전으로 한 면이 연주되는 데만 약 25분이 걸리던 과거 전축판 롱플레잉(LP) 구매가 최근 늘어나는 이유도 보고 느낄 수 있는 감각이 CD보다 LP에서 더 진하게 묻어 나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레트로 열풍이 거세지자 기업들은 이를 제품 판매로 연결시키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이는 음향기기, 카메라, TV 냉장고 등 가격대 높은 첨단 가전제품에서 두드러진다. 레트로 제품은 쉽게 구할 수 없다는 희소성 때문에 기업들은 레트로 가전제품을 고가로 출시, 프리미엄급 이미지를 갖출 수 있다. 여기에 빠르게 발전하는 첨단 정보통신(IT) 기술에 피로감을 느끼는 국내 소비자들이 익숙하고 단순한 레트로 제품을 찾는 경향도 많아지고 있다.

대유위니아는 최근 전기압력밥솥 ‘딤채쿡 레트로’를 선보였다. 이 제품은 항아리를 닮은 한국적 곡선과 라디오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제품 색상도 민트 그린, 크림 화이트 등 에나멜 색상을 적용해 레트로 분위기를 더했다.

유닉스전자의 ‘파워맥스 드라이어’는 레트로 디자인을 전면에 부각시킨 제품이다. 긴 노즐과 동그란 몸통 디자인에 복고풍 분위기를 담았으며, 메탈 소재 외관으로 현대적인 감각을 더했다. 대우전자는 소형 인테리어냉장고인 ‘더 클래식 냉장고’ 등 레트로 라인업을 선보였다. 두 제품 모두 크림화이트 색깔 등으로 레트로 느낌을 풍긴다.

소비자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던 먹거리 분야에서도 레트로 마케팅은 활발하다. 롯데네슬레코리아는 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제품 ‘테이스터스 초이스 레트로 1988’을 한정 출시했다. 과거 제조법을 그대로 사용해 당시 판매되던 제품과 동일한 맛을 재현한 것이 특징이다.

롯데제과는 지난해 창립 50주년을 맞아 가나 초콜릿, 빠다코코낫 비스킷 등 장수과자 11종을 예전 패키지 포장으로 재출시했다. 또한 아이스크림인 죠스바와 스크류바, 수박바를 묶은 ‘죠ㆍ크ㆍ박’ 패키지를 선보여 출시 50일만에 무려 1,000만개를 판매하는 기록을 올렸다.

김현우 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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