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보다 경제 택한 대만… 민진당 지방선거 참패

입력
2018.11.25 17:42
수정
2018.11.25 23:39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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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잉원 총통 “당대표 사퇴”… 탈중국 정책에 경제난, 농어민 등돌려

가오슝시장 선거 한궈위에 완패… ‘올림픽 타이완 국호’ ‘탈원전법’ 폐기

2018년 대만 광역단체장 선거 결과. 한국일보 그래픽팀.
2018년 대만 광역단체장 선거 결과. 한국일보 그래픽팀.
대만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야당 국민당 지지자들이 24일 가오슝에서 축하 집회 도중 환호하고 있다. 가오슝=AP 연합뉴스
대만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야당 국민당 지지자들이 24일 가오슝에서 축하 집회 도중 환호하고 있다. 가오슝=AP 연합뉴스

대만의 정치 구도가 하루만에 뒤집혔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 민주진보당(민진당) 정권의 중간 평가 성격을 띠는 24일 대만 지방선거가 민진당의 참패로 끝났다. 총통 선거가 불과 14개월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차이 총통의 재선 도전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중국과의 포용적인 구 집권세력 국민당이 예상 외로 크게 기세를 올리면서 중국과 대만의 양안관계에 미칠 영향도 주목되고 있다. 차이 총통의 탈(脫) 중국 노선에 따른 중국의 압박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 농어민〮ㆍ관광업자들이 등을 돌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동시에 열린 국민투표에서도 차이 총통이 추진해 온 탈원전 정책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지난해 발생한 대(大)정전으로 탈원전 정책에 대한 반감이 높아진 탓이다.

이날 선거에서 민진당은 제2도시 타이중(臺中)과 남부 가오슝(高雄)을 비롯해 2014년 선거로 차지했던 13개 광역단체장 자리 중 7개를 국민당에 내줬다. 반면 국민당은 2014년 선거 당시 6개에서 9개를 더해 총 15개 광역단체장 자리를 차지했다. 차이 총통은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교훈을 줬다”라며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즉각 당대표 자리를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대만 야당 국민당 소속 한궈위 가오슝시장 후보가 선거 승리 연설을 하고 있다. 가오슝=로이터 연합뉴스
대만 야당 국민당 소속 한궈위 가오슝시장 후보가 선거 승리 연설을 하고 있다. 가오슝=로이터 연합뉴스

◇국민당 소생시킨 ‘한궈위 돌풍’

선거 결과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가오슝시장 선거다. 민진당의 텃밭으로 불리는 이 곳에서 국민당 후보 한궈위(韓國瑜)가 압승을 거둔 것이다. 가오슝은 1979년 진보 잡지 메이리다오(美麗島) 주최로 민주화 시위가 발생한 곳으로, 이 사건을 계기로 모인 인사들이 오늘날의 민진당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민진당은 지난 20년간 가오슝시장직만은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던 한 후보가 민진당의 천치마이(陳其邁) 후보를 압도하는 대반전을 이뤘다. 이름 첫 두 글자가 한국(韓國)과 같다는 이유로 그의 돌풍에는 ‘한류(韓流)’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10년 내로 가오슝 인구를 2배로 늘리겠다”는 황당무계한 공약을 내놨지만, 민진당 집권 20년간 경제 침체와 인구 감소를 경험한 가오슝시민들은 한 후보의 ‘포퓰리즘’에 환호를 보냈고 끝내 시장직까지 안겼다. 한 후보의 승리는 단순히 험지에서 승리했다는 차원을 넘어, 2016년 선거 참패 이후 재정비에 어려움을 겪어 온 국민당에 새 바람을 불어넣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반면 차이 총통은 2020년 선거를 앞두고 치명적인 타격을 입어, 재선은커녕 당 후보로 선출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해졌다. 당선 당시 내세운 진보적 사회정책의 실현은 지지부진했고, 경제 회복도 이뤄지지 않았으며, 냉각된 양안관계도 현실적인 부담으로 작용했다. 차이 총통 집권 후 중국은 대만의 해외 수교국들이 대만과 하나씩 단교하도록 하는 식으로 경제ㆍ외교 압박을 지속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24일 지방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민진당 의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연설하고 있다. 타이베이=로이터 연합뉴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24일 지방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민진당 의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연설하고 있다. 타이베이=로이터 연합뉴스

◇민진당과 함께 흔들리는 대만 독립 노선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가 국내 정치 문제를 중심으로 치러졌기에 대만의 독립을 추구하는 차이 총통의 노선이 부정당한 건 아니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차이 총통의 리더십이 흔들린 이상 그의 탈 중국화 정책 추진도 힘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진행된 국민투표 결과도 민진당이 앞세우는 대만 독립 노선에 부정적인 신호다.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차이니스 타이베이’ 대신 ‘타이완’ 국호를 달고 참여한다는 제안을 약 55%가 반대한 것이다.

민진당은 선거를 앞두고 중국 정부가 국민당을 공공연히 지원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표심 결집을 노렸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특히 한궈위 후보의 영향력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커지는 것을 두고 중국의 개입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했지만, 막상 선거 결과는 완패로 드러나면서 더 큰 내상을 입었다.

당장 중국은 선거 결과를 차이 총통의 독립노선을 거부한 것으로 해석하며 여론 몰이에 나섰다. 중국 국무원 타이완사무판공실의 마샤오광(馬曉光) 대변인은 25일 대만 선거 결과를 확인했다면서 “중국은 대만과 연대를 증진하고 양안 관계의 평화적 발전을 추구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대만’ 이름으로 올림픽에 나가자는 투표가 부결된 것에 대해서 “대만 선수의 이익을 걸고 도박하는 행위는 실패가 정해져 있다”고 주장했다.

대만의 동성혼 지지자들이 국민투표에서 패한 후 25일 가오슝에서 동성혼 지지 집회 행진을 개최하고 있다. 가오슝=로이터 연합뉴스
대만의 동성혼 지지자들이 국민투표에서 패한 후 25일 가오슝에서 동성혼 지지 집회 행진을 개최하고 있다. 가오슝=로이터 연합뉴스

◇동성혼ㆍ탈원전 등 줄줄이 브레이크

동시에 열린 다른 국민투표에서도 동성혼 합법화와 탈원전 정책 등 차이 총통이 추진해 온 진보정책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2017년 5월 대만 사법원 대법관회의가 이성 간 결합만을 혼인으로 인정하는 법률은 위헌이라고 판결한 후, 차이 총통 정부는 동성혼 합법화를 위한 법률 개정을 고려했지만 24일 국민투표에선 현행 민법을 유지하는 방안이 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

차이 총통이 2017년 1월 신설해 2025년까지 원전 이용을 모두 중단하기로 한 법률 조항도 폐기됐다. 그해 8월 발생한 대정전 사태 이후 전력 공급이 부족하다는 지적으로 탈원전 정책에 대한 회의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다만 애초 탈핵운동의 도화선이 된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해당 지역 산물의 수입을 중단한 정부 정책은 지지를 받았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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