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촉구’ 후폭풍… 법관회의 대표성에 물음표

입력
2018.11.23 04:40
수정
2018.11.23 14:3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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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논리 휘둘려”… 소신투표 논란에 속기록 공개 요구도

‘사법농단’ 징계 청구 판사 13명 명단 정치권서 유출 논란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사법농단에 연루된 현직 법관의 탄핵소추를 촉구한 전국법관대표회의 의결을 두고 법원 내부에서 뒷말이 끊이지 않는다. 의결을 이끌어낸 법원 내 공식 기구인 법관대표회의의 대표성을 문제 삼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법관 탄핵 요구를 기점으로 법원 내부 의견이 확연하게 찬반으로 갈리는 분위기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달 19일 법관대표회의의 탄핵 소추 의결과 관련, 일부 판사들은 법관대표회의의 대표성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지법의 한 판사는 “판사들이 정치 논리에 휘둘리는 것 같다”며 “(블랙리스트 피해자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사람들이 많다 보니 그들 의도대로 흘러가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법관대표회의 집행부 13명 중 7명은 법원 내 진보성향 법관 모임으로 구분되는 우리법연구회 혹은 그 후신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다.

법관대표회의의 대표성 문제가 불거진 이유는 당시 탄핵 검토 안건이 찬성ㆍ반대가 큰 차이 없이 가까스로 통과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탄핵 소추 검토안은 출석자 114명 중 105명이 투표에 참석해 찬성 53명, 반대 43명, 기권 9명으로 의결됐다. 출석 구성원 과반수 찬성이 아닌, 투표자(105명)의 과반으로 의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의제가 올라오기까지 과정을 문제 삼는 의견도 있다. 의제에 오른 사법농단 연루 법관 탄핵소추안은 이달 12일 대구지법 안동지원 판사 6명의 결의로 시작됐다. 이 검토안은 법관대표회의의 의안발의 기한(12일)을 한참 넘긴 회의 당일(19일)에 발의됐다. 일부 판사들은 이 과정에서 의견 취합을 위한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검토안은 15일부터 의견수렴 절차에 착수됐는데, 17, 18일이 주말임을 감안하면 실질적 의견수렴은 이틀밖에 하지 못한 셈이다. 서울 지역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규모가 큰 법원에선 찬반 투표가 아닌 이메일로 의견을 받아 사실상 의견을 제시한 사람이 적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회의 당일 투표 과정에서 일부 판사들이 ‘소속 법원의 의견’이 아닌 ‘개인의 소신’대로 찬반 투표에 응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대표성은 물론 신뢰성 문제까지 불거졌다. 한 고법의 부장판사는 “대표로 간 사람이 떳떳하게 소신 투표를 택했다면 실명을 밝힐 각오도 한 것 아니냐”며 속기록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지적에 대해 탄핵 검토안에 찬성한 판사들은 절차나 대표성에 문제가 없었다고 반박한다. 법관대표회의는 ‘대리’가 아닌 ‘대표’ 자격으로 뽑혔는데, 대표로 의견을 내는 게 왜 문제냐는 지적이다. 지법의 한 판사는 “대표가 일부 의견을 대변하지 않았다고 해서 특정 프레임을 덧씌우거나 자질을 문제 삼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속기록 공개요구 역시 정치공세로 이용될 소지를 배제하긴 어렵다. 한 판사는 “속기록을 실명 공개하면 정치적으로 악용되거나 해당 법관에 낙인이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이에 찬성하는 건 의견을 달리 하는 동료법관을 찍어 누르겠다는 의도”라고 반박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대법원 규정상 대외비로 분류되는 징계 청구 판사 13명 명단이 이날 정치권에서 흘러나왔으나 대법원 관계자는 "피징계 청구자의 신상을 공개하거나 국회에 제공한 적도 없다"고 해명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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