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식 칼럼] 손학규가 옳았다

입력
2018.11.22 18:00
수정
2018.11.22 22:22
30면

‘전원책 소동’ 후 한국당 비대위 동력 상실

김병준 파탄…친박 득세 이어 홍준표 복귀

“박근혜, 태극기만 남은 한국당 소멸” 예언

손학규(오른쪽) 바른미래당 대표가 22일 서울 중구 천주교 서울대교구청을 방문, 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손학규(오른쪽) 바른미래당 대표가 22일 서울 중구 천주교 서울대교구청을 방문, 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지난달 중순 “자유한국당은 다음 총선에서 없어질, 없어져야 할 정당”이라고 말했을 때 그저 홧김에 뱉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한국당 비대위가 칼잡이로 영입한 전원책 변호사가 난데없이 보수통합 운운하며 바른당 중진들과 연락하고 있다고 바람을 잡으니 모욕감을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 손 대표와 당의 처지가 한 평론가의 말에 흔들릴 정도로 곤궁한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대주주인 유승민 의원 등의 거취를 포함해 당이 끊임없이 외풍에 시달리던 때였다. 그런데 이후 상황은 한국당이 반동 기류에 휩싸이는 자중지란에 빠져들며 “손 대표의 예상이 옳았다”는 쪽으로 급반전되고 있으니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 갈파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혜안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7월 구원투수를 자처하며 등장했을 때만 해도 기대는 있었다. “보수세력이 박정희식 과거 패러다임에 묶여 자유주의적 시민사회의 성장 등 역사의 흐름을 놓쳤다”고 반성하며 국가ㆍ시장ㆍ공동체가 맞물려 돌아가는 ‘세 바퀴 국가론’을 내세운 것은 신선했다. 보수야당의 가치와 비전을 새롭게 세운 뒤 이 잣대로 인적 청산과 새 피 수혈 작업을 하겠다는 로드맵도 괜찮게 들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치열한 노선투쟁 없이 2개월 쑥덕공론 끝에 내놓은 자유ㆍ민주ㆍ공정ㆍ포용 등 4대 가치는 감동이나 공감은커녕 비웃음의 대상이 됐고, 서생에 불과한 김 위원장의 빈약한 밑천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을 뿐이다.

국면 전환을 위해 급하게 꺼내 든 ‘전원책 카드’는 한국당을 혼돈에 빠져들게 한 결정타였다. ‘십고초려’해 대단한 ‘칼잡이 재사(才士)’를 모신 것처럼 포장했으나 그 칼날이 자신에게 되돌아올 줄은 김 위원장도 몰랐을 것이다. 70년 보수야당의 물갈이 작업을 하청받은 업자가 대뜸 “경제민주화란 진보주의 강령을 받아들이고 이념과 동떨어진 정체불명의 당명을 채택하며 ‘보수를 버려야 한다’면서 빨간 색깔로 당색을 바꿨을 때 한국당은 침몰하기 시작했다”고 단정할 때 알아봤어야 했다. 결국 전당대회 일정을 둘러싼 충돌로 전원책은 ‘해촉’되지만 김 위원장 역시 ‘해고’ 수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친박 등 이른바 잔류파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최근 “비대위가 당의 혁신과 위기 수습은커녕 더 큰 수렁에 빠트렸다”며 비대위 해체를 주장하는 ‘우파재건회의’를 결성하는 등 세 결집을 노골화하고 있다. 복당파가 주축인 비대위는 20대 총선 책임론 등 인적 청산 기준을 공개하며 배수진을 치지만 전원책 소동의 상처가 깊어 대세는 이미 기운 느낌이다. 절대적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가 있어도 감당하기 힘든 게 물갈이 후유증이다. 권위는 물론 신뢰까지 잃은 김병준 비대위로는 청산도, 수혈도 그림의 떡이라는 얘기다.

이 틈새를 뚫고 홍준표 전 대표가 돌연 현장정치 복귀를 선언했다. “나라가 통째로 무너지고 망가지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라는 깃발을 앞세우고 ‘홍준표가 옳았다’는 국민 믿음이 설 때 돌아오겠다고 한 약속을 내세웠다. 김병준의 얘기에 따르면 역사의 흐름을 놓친 책임으로 떠난 사람이 되레 김병준의 리더십 빈곤을 문제 삼아 역사를 앞세워 돌아오니 이런 아이러니도 없다.

더 황당한 것은 김 위원장이 최근 친박ㆍ반박이 경쟁적으로 입에 올리는 ‘반문연대’에 숟가락을 얹은 것이다. “반문(反文) 비전을 공유하는 보수네트워크를 추진하겠다”는 그의 말은 가치와 좌표를 중시하던 취임 포부에 비춰보면 자가당착이자 논리 파탄이다. 말이 좋아 반문연대지 실상은 정치생명을 연장하려는 기득권 연대 혹은 문 정부의 실책만 바라보는 ‘기생연대’이니 말이다.

결국 한국당은 돌고 돌아 도로한국당이 됐다. 그동안 환골탈태ㆍ육참골단ㆍ읍참마속 등 온갖 좋은 말은 다 동원하며 변화와 개혁을 약속했으나 남은 것은 태극기 부대와 박근혜 신화뿐이다. 존재 자체가 스트레스인 당이 어떻게 살아남을까. 홍준표가 손학규의 예언을 실행하기 위해 복귀한 것이라면 백번 환영한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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