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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원내대표는 “대화를 해서 뭐가 되는 곳이 아니다” “항상 폭력적인 방식을 쓴다”고 민주노총을 비난했다. 화물연대 파업으로 시작된 참여정부의 위기가 문재인 정부에서 재연될까 두렵다. 실제 한국노총은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 후퇴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민주노총은 탄력근로제 확대 저지를 위해 총파업을 벌였다.

그런데 싸움의 구도가 묘하다. 아니 쭉 그래 왔던 것 같다. 노동조건의 변경은 노사 간에 첨예한 갈등이 만들어지는 이슈인데도 싸움은 노사가 아닌 노정 간에 벌어진다. 탄력근로 단위 기간을 확대하는 것은 사측이 원했던 일인데 정작 사측은 보이지 않고, 정부 여당이 깃발을 든 모양새다. 노동계도 사측을 향해 날을 세우지 않고 대정부 투쟁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덕분에 가뜩이나 살얼음판 같은 사회적 대화가 깨질 것 같다.

사실 한국은 사회적 대화의 경험이 일천하고 북서 유럽과 달리 노동과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강력한 정상 조직도, 계층과 계급을 대표하는 정당도 없는 등 사회적 대화를 위한 전통적 조건을 결여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은 어느 사회보다 절실하다. 심각한 노동시장 양극화, 낮아지는 성장 잠재력 등 현재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패러다임 전환은 노사정 간의 사회적 대화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에서 사회적 대화를 성공시킬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공정한 중재자와 조력자 역할을 수행하면서 노사정 간의 사회적 대화를 이끄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사측 이해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고, 사측이 정부 뒤에 숨는다면 사회적 대화는 불가능해진다.

지금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탄력근로 기간 확대처럼 노동조건과 관련된 중요한 변화가 사측이 요구한 일정에 맞추어 추진되고 있다는 오해를 받기 딱 좋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총리는 은행장들을 만나 “탄력근로제 확대를 연말까지 해결하겠다”고 확약하고, 노동정책실장은 올해 안에 노사정 논의가 끝나야 한다는 것이 정부 원칙이라며, 노사정에만 맡겨 두지 않겠다고 이야기한다.

사회적 대화는 기본적으로 노사정이 대화를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거래하는 장이다. 경영계가 탄력근로 기간 확대를 원한다면 직접 노동계와 대화해야 한다. 노동의 양보를 원한다면 사측 또한 무엇을 양보할지 분명히 보여 주어야 하고, 정부의 보증과 보완책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사측이 정부 뒤에 숨고 정부가 사측의 이해를 대변하는 형국이다. 지금처럼 사측이 정부를 통해 자신의 이해를 관철시킬 수 있는 구조에서 노동은 물론, 자본도 사회적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이유가 없다.

물론 조직노동도 답답하다. 민생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조직노동은 몇 가지 정책적 이해를 관철하는 것 외에 사회적 대화를 성사시키기 위한 절실함이 보이지 않는다. 심각한 민생 문제로부터 조직노동의 구성원은 ‘잠시’ 비켜 나 있을지도 모르지만, 국민 대부분의 삶은 정말 심각하다. 조직노동이 정치적 고립을 극복하고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와 연대하고, 사회적 대화에 적극 참여해 조직노동만의 이해가 아닌 이 땅의 모든 ‘을(乙)’들의 이해를 절실하게 대변해야 한다. 조직노동이 민중의 대변인이라면 사회적 대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이다.

경영계 또한 정부 뒤에 숨지 말고 노동계와 직접 대화하고, 정부는 공정한 중재자와 조력자여야 한다. 더불어 구조적 조건을 결여한 한국 사회에서 성공적인 사회적 대화는 위기에 대한 노사정의 절박한 인식과 위기를 해결하고자 하는 절실함이 있을 때 가능하다. 지금처럼 민생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 대화는 어쩌면 ‘을’들의 이해가 대변될 수 있는 유일한 장이고,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유일한 길인지도 모른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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