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판결 이어 위안부 문제까지… 한일관계 출구 안 보인다

입력
2018.11.21 20:30
수정
2018.11.21 22:05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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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해ㆍ치유재단 해산 공식화] 

 정부, 해산 외 마땅한 대안 없어… 日, 두 개 사안을 하나의 틀로 “번번이 뒤집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파푸아뉴기니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포트모르즈비 APEC 하우스에서 열린 'APEC 지역 기업인 자문회의(ABAC)와의 대화'에 입장하고 있다. 왼쪽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포트모르즈비(파푸아뉴기니)=연합뉴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파푸아뉴기니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포트모르즈비 APEC 하우스에서 열린 'APEC 지역 기업인 자문회의(ABAC)와의 대화'에 입장하고 있다. 왼쪽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포트모르즈비(파푸아뉴기니)=연합뉴스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다. 새삼스러운 과거사 갈등 탓이다. 예고된 악재들이지만 한일 양국이 이를 봉합할 묘수를 찾지 못한 채 결국 하릴없이 감내하는 모습이다. 21일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지원을 위해 설립된 화해ㆍ치유재단의 해산 결정을 공식화하면서 지난달 대법원의 일본 기업 대상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이 문을 연 양국 관계 경색 국면이 더 심화하는 형국이다.

사실 정부로서는 재단 해산 외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거부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의 양대 축 중 ‘일본 총리 사죄’가 무너지면서 재단이라는 기둥만 남아 합의를 지탱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기능이 상실됐어도 이름만은 남겨 두는 게 한일관계를 감안한 정부의 조치였을 법하다. 하지만 일부 위안부 피해자들과 단체들의 재단 존치 반대 목소리가 워낙 거센 데다 방치된 상태에서 들어가는 사무실 운영비도 정부에게는 부담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월 유엔 총회를 계기로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때 아베 총리에게 “지혜롭게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재단 해산 방침을 통보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지난달 30일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로 한일관계가 삐걱대기 시작했지만 정부는 해산 발표를 굳이 미루지 않았다. 냉각기를 맞고 있는 한일관계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전날 “사법부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나온 강제징용 판결과 화해ㆍ치유재단 처리는 별개 차원인 만큼 양자를 연계하는 방안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합의 파기나 재협상 요구를 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대로 이번 발표에서도 합의 자체를 언급하는 일은 피했다.

그러나 일본은 두 개 사안을 하나의 틀로 본다. ‘정부 간 합의 위반’이다. 이날 우리 정부의 재단 해산 발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아베 총리는 “국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가와 국가의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장관도 대법원 징용 판결 관련 인터뷰에서 이미 수차례 “국제법에 기초해 한국 정부와 맺은 협정을 한국 대법원이 아무 때나 뒤집을 수 있다면 어떤 나라도 한국 정부와 일하는 게 어려울 것”이라고 우리 정부를 비난했었다. 앞으로도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두 사안을 연계해 공세를 벌일 공산이 크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이어 위안부 합의까지 한국이 어겼다는 논리를 펼 것으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국면 전환 계기가 딱히 안 보인다는 사실이다. 아직 악재도 소진되지 않은 상태다. 지난달 신일철주금에 이어 미쓰비시중공업이 피고로 등장하는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재상고심 선고가 29일 이뤄진다. 아베 총리와 일본 극우 언론 등은 이번 일들을 자국 여론 주도에 활용할 심산인 듯하다. 아베 총리는 강제징용 배상 판결 뒤 열린 여러 국제회의에서 문 대통령과 사흘간 4번 만났지만 별 대화 없이 악수만 했고, 산케이신문은 이를 두고 회담을 해도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아베 총리의 ‘전략적 방치’라고 해석했다.

실제 일본 내 기류도 심상치 않다고 한다. 김재신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고문은 “한국의 과거사 요구를 양해하던 일본 내 친한(親韓) 그룹 사이에서까지 한일 간 합의가 번번이 뒤집히자 ‘이번이 끝이 아닐 수도 있다’는 불신이 번지고 있다”고 전했다. 김 고문은 “대북뿐 아니라 대외 정책 전반에 걸쳐 일본의 지지 확보가 불가피한 만큼 민간 오피니언 리더층까지 대일 접촉면을 넓히면서 상처가 아물 때를 기다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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