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나를 치유하는 글쓰기, 인생연대기

입력
2018.11.21 04:40
31면

살다 보면 “대체 왜 저래?”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르는 순간이 있다. 친구, 동료, 상사.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모습들. 이 상황에 도대체 왜 저런 말을 할까. 상식적으로 이쪽이 맞는데, 어떻게 저쪽으로 가지? 싶은 순간들 말이다. 하지만 더 가슴이 답답해질 때는 따로 있다. 나 자신의 모습에서 “왜 이래?” 싶은 점을 발견할 때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제가 생각해도 대체 왜 이러는지를 모르겠어요. 퇴사가 이렇게까지 불안해할 일 아닌 거 알거든요….” “아무도 나한테 뭐라고 안 하는데, 왜 자꾸 내가 못생겨 보이는지 모르겠어요.” “저도 서른일곱이니 알죠.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나한테 관심 없고, 다 나만 쳐다보며 욕하고 있진 않는다는 거. 그런데도 어린애처럼 자꾸 남의 말 한마디에 잠을 못 이뤄요. 나잇값 못하죠?”

타인이 이상하면 ‘그래 원래 저런 인간이다.’라고 여기면 그만이련만, 도무지 자신은 피할 길이 없다. 과도하게 불안해하는 나. 자신을 몰아붙이는 나. 겁에 질린 듯 타인을 의식하는 나. 모양만 다를 뿐,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이해 불가 내 모습’은 마치 그림자 같다. 언제나 내 곁에 붙어 있다. 도무지 피할 길도, 외면할 방도도 없다.

지난 보름, 나는 같은 시간, 장소에서 엑셀 프로그램을 켜고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마지막 날, 모니터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아이처럼 삼십 분을 엉엉 울었다. 샤워를 막 끝마친 듯 시원해졌다. 슬픔의 결정체가 아닌, 가슴속 응어리 하나를 쑥 빼낸 듯 한 건강한 눈물이었다. 상담가가 된 후, 어지간한 일에는 눈물이 없어진 나를 그토록 울린 작업의 이름은 ‘인생연대기 쓰기’였다. 말 그대로 ‘나’라는 사람의 인생을 연표로 만들어보는 것인데, 학창시절 국사 시간에 배웠던 연표와도 비슷하다. 방법은 대강 이렇다.

가장 왼쪽 열에는 내가 태어난 연도부터 2018년까지를 쭉 써 내려간다. 바로 옆에는 그해에 기억나는 ‘사건명’을 쓰고, 다음 칸에는 ‘내용’을 쓴다. 마지막으로는 ‘내게 미친 영향’을 쓴다. 그렇게 표 양식을 만들고 난 뒤에는 대입, 실연, 결혼, 취업, 퇴사, 가족의 죽음 등 기억나는 굵직한 사건부터 시작한다. 차차 생각을 더듬다 보면, 아득히 잊고 있었던 작은 사건들이 떠오른다. 밀려 쓴 성적표를 가져가며 떨렸던 중3의 순간, 눈물 쏙 빠지게 혼났던 사회초년생의 어느 날 같은 것들 말이다. 그렇게 큰 것에서부터 작은 것으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틈틈이 채워나가기만 하면 된다. 순서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 한 해에 여러 사건이 있었다면 모두 쓰고,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연도는 비워두는 식이다.

지난가을, 나 역시 30여 년의 세월 동안 겪었던 70여 개의 사건들을 촘촘히 채워냈다. 그것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1988년, 1993년의 사건들을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글로 표현해 시각적으로 바라보니 머릿속 상상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한 발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아, 이 사건은 어린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상처이겠다, 이런 큰 상처를 겪을 당시의 나는 열한 살이었구나, 이런 느낌으로 ‘그 시절의 나’를 타자화하며 바라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내 삶은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건과 상처들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당시의 나는 참 어린 존재였다는 것. 그런데도 그 모든 순간을 헤쳐, 지금을 살아가는 나 자신이 참 대견하다는 마음까지.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이 어린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꼬.”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지나온 날의 작고 여렸던 나와, 훌쩍 커버린 지금의 나가 서로 만나 꼭 끌어안은 순간. 우리는 지금껏 자신에게 회초리만을 대 오던 엄격함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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