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470조 슈퍼예산’도 여야 정쟁의 볼모로 삼을 셈인가

입력
2018.11.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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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장관 인사 강행 등으로 빚어진 국회 파행 사태가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서 급기야 새해 예산안마저 표류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지난 15일 본회의를 보이콧한 이래 여야는 대화채널을 가동해 왔으나 서로 양보만 요구하며 감정싸움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부별 심의를 끝낸 ‘슈퍼예산’에 본격적으로 가위질을 해야 할 예산안조정소위조차 구성하지 못한 까닭이다. 국회가 법정처리시한(12월 2일)까지 불과 10여일 남겨 놓고도 470조원이 넘는 예산안을 방치하면서 부실ㆍ편법 심의가 되풀이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여야 3당 원내대표는 19일에도 머리를 맞댔지만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 국정조사 문제 등을 놓고 설전을 벌이다 얼굴만 붉힌 채 헤어졌다. 회의 결렬 책임을 민주당에 돌린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예산과 민생법안들을 걷어차고 국민을 무시한다면 특단의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비난하고 상임위 간사들에게 “별도 지침이 있을 때까지 국회일정을 보류 해달라”는 메시지를 돌렸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민주당이 야당의 최소한의 요구까지 무참히 짓밟고 있다”고 가세하며 여당을 압박했다. 반면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야당이 고용세습 국정조사, 조국 민정수석 해임 등 지나친 요구를 반복하며 절박한 예산안 심의와 민생법안을 팽개치고 있다”며 야당의 연계투쟁을 공격했다. 이런 분위기 탓에 비교섭단체 포함 여부를 놓고 여야가 대립해 온 예산안조정소위 구성 문제도 여야 예결위 간사 선에서 수싸움과 네탓 공방만 하다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 같은 여야의 기 싸움은 향후 정국 주도권을 둘러싼 전략적 선택이어서 어느 쪽을 편들기 쉽지 않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예산안이 정쟁의 볼모나 희생양이 되어선 안 된다. 여야의 이해가 엇갈려 합의가 어려우면 관례를 따르는 것이 정답이고, 칼자루를 쥔 쪽이 정치력을 발휘하며 양보하는 것이 오랜 의회정치의 관행이다. 또한 완승과 완패를 피해야 하는 것이 정치이고, 때론 손해를 감수하며 결단하는 게 정치의 묘미다. 지금 칼자루를 쥔 쪽이 어디인가. 청와대이고 민주당이다. 결단해야 하는 쪽은 야당이다. 시간은 야당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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