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적 삶 살아온 장애인들의 모습을 담았죠”

입력
2018.11.19 16:51
수정
2018.11.19 19:36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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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들장애인야학 활동가 등 

 학생들 급식비 마련 위해 

 달력 만들어 인터넷 판매 

노들장애인야학이 급식비 마련을 위해 제작한 2019년도 캘린더의 5월 일러스트레이션. 탈시설 후 2,000만원을 모아 기부한 '꽃님' 김선심씨가 주인공이다. 노들장애인야학ㆍ크리에이티브 다다 제공
노들장애인야학이 급식비 마련을 위해 제작한 2019년도 캘린더의 5월 일러스트레이션. 탈시설 후 2,000만원을 모아 기부한 '꽃님' 김선심씨가 주인공이다. 노들장애인야학ㆍ크리에이티브 다다 제공

정부가 지원하는 월 수십만원의 보조금으로 근근이 생활하면서도 무려 2,000만원을 모아 같은 장애인에게 쓰라며 모아 기부한 김선심씨, 장애인 시설을 온몸으로 기어 탈출해 독립한 장애경씨, 난독증 때문에 글을 읽지 못하는데도 타고난 듣기 능력으로 야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고(故) 김호식씨.

중증장애를 극복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 온 장애인과 이들을 돕는 활동가들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담아 만든 내년도 달력이 나왔다. 노들장애인야학은 이곳에서 공부하는 중증장애인들의 급식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 같은 캘린더를 제작하고 인터넷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텀블벅’을 통해 캘린더 판매와 모금을 진행하고 있다고 19일 밝혔다.

캘린더에 그려진 인물 중 특히 눈에 띄는 이는 5월의 주인공인 김선심(54)씨다. 동료와 활동가로부터 ‘꽃님’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김씨는 뇌병변 장애 1급이다. 태어나서 무려 38년을 집에서 TV만 보며 살았다. 2002년 10월, 한 지적장애인 시설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집밖으로 나왔지만 시설은 감옥 같았다. TV 시청은 밤 9시까지만 허용됐고 이를 어기면 밥을 먹지 못했다. 마음대로 통화할 자유조차 없었다. 김씨는 시설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러 왔던 장애인 탈시설 운동단체 ‘발바닥’ 활동가에게 연락해 2006년에 시설 밖으로 나와 자립하게 되었다.

당시 혼자 사는 장애인에게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은 월 40만원. 김씨는 이 돈으로 월세를 내고 남은 쥐꼬리만한 돈으로 먹고 살며 저축했다. 매일 김치찌개와 밥 한끼만 먹으며 2년을 버텨 보증금을 마련했고, 이후 8년 동안 독하게 모은 2,000만원을 자신의 탈시설 10주년이 되던 2016년 활동가들에게 기부했다. 자신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하는 장애인들을 한 명이라도 더 시설에서 나올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지난 여름 강서구의 임대아파트에서 폭염과 사투를 벌이며 중증장애인 활동보조인 24시간 지원을 위해 정부에 청원하는 등 활동을 해 온 김씨는 캘린더 제작을 앞두고 노들야학과 가진 인터뷰에서 “시설 안에 있을 때는 먹으라면 먹고 자라면 자면서 가축처럼 살았지만 지금은 힘들어도 자유롭게 산다”며 “나만 행복할 수 없어 기부했다”고 말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장애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놓친 장애인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다. 노들장애인야학 제공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장애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놓친 장애인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다. 노들장애인야학 제공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공부하는 장애인들의 급식비 마련을 위해 제작한 2019년도 캘린더. 노들장애인야학, 크리에이티브 다다 제공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공부하는 장애인들의 급식비 마련을 위해 제작한 2019년도 캘린더. 노들장애인야학, 크리에이티브 다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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