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P대출 사기ㆍ횡령 기승... 최소 1000억 피해

입력
2018.11.20 04:4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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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P 대출. 한국일보
P2P 대출. 한국일보

개인간(peer to peerㆍP2P) 대출 중개 업체 ‘아나리츠’는 2016년 9월부터 올해 6월까지 부동산 대출 상품에 투자를 하면 연 10%가 넘는 이자를 준다며 1만명에게서 1,100억원의 투자금을 끌어 모았다. 그러나 이 회사는 130여건의 부동산 대출상품 중 10여건에 대해서만 실제로 대출을 내주고 나머지는 선순위 투자자에게 원금과 이자를 주는 일명 돌려막기에 투자금을 썼다. 일부는 주식을 사는 데도 사용했다. 금감원은 아나리츠를 검찰에 수사의뢰했고, 이 회사 대표 등 3명은 구속됐다. 피해자 4,000여명은 투자금 300억원을 돌려받을 방법이 마땅찮아 발을 구르고 있다.

P2P 대출시장 현황. 김경진기자
P2P 대출시장 현황. 김경진기자

떠오르는 핀테크(Finance+Tech) 산업의 하나로 주목 받으며 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P2P 시장에 투자주의보가 내려졌다. 금융감독원이 P2P 업체 전체를 대상으로 실태점검을 벌였는데, 아나리츠처럼 사기ㆍ횡령 혐의가 포착된 업체가 9곳 중 1곳에 달했다. 투자자 피해규모는 최소 1,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금감원은 우선 이들 업체를 검찰로 넘겼지만, 이들 업체 대부분 청산 대책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상당수 투자자는 투자금을 떼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금감원은 19일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한 ‘P2P 대출 취급실태 점검결과’를 발표했다. 금감원은 올해 3월부터 P2P 연계대부업자 178곳을 대상으로 영업행태와 투자자보호 실태를 점검했다. 이중 20곳(11.2%)에서 사기ㆍ횡령 혐의가 포착됐다. 나머지 158곳 역시 안심할 수 없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진태종 금감원 팀장은 “업체가 워낙 많아 일단 1,2일 약식 점검만 하고 이중 법을 위반한 것으로 의심되는 업체만 골라 정밀 검사한 끝에 20곳을 적발한 것이어서 나머지도 정밀 검사를 하면 문제가 드러날 수 있다”며 “P2P 시장이 상당히 혼탁한 상태”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20곳 외 사기 혐의가 의심되는 10곳에 대해 추가 검사를 벌일 예정이다.

이번에 적발된 20곳은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투자금을 돌려주는 식의 폰지 사기(Ponzi scheme) 형태를 띠고 있었다. 건물을 지을 수 없는 맹지를 부동산프로젝트(PF) 사업장으로 속이거나 가짜 골드바 보증서를 내세워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식이다. 이들은 이렇게 끌어 모은 돈을 주식 또는 가상화폐에 투자하거나 대주주의 사업자금으로 썼다. 한 업체는 친구를 허위차주로 내세워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사실상 처음부터 투자금을 빼돌릴 목적으로 P2P 플랫폼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P2P가 핀테크의 한 분야로 떠오르자 투자자를 사기에 적극 이용한 셈이다.

금감원은 이날 20곳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검찰 수사 중 업체명을 공개할 경우 업체 대표가 투자금을 먹튀(먹고 튀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경우에 따라선 검찰 수사에서 무혐의를 받는 업체가 나올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20곳의 투자금이 묶인 투자자는 수만명 수준이고, 투자금은 최소 1,000억원 이상이다. 조만간 시장에 20곳의 명단이 알려지면 투자자들의 투자금 회수 요구가 빗발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로선 이들 업체가 온전히 투자금을 돌려주기 힘들다는 게 금감원의 판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P2P 대출은 원금 보장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이는 투자자가 감안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P2P 시장을 방치하면서 투자자 피해를 키운 것 아니냔 지적도 나온다. 현재 P2P 업체는 아무런 법적 지위가 없다. P2P 업체의 평균 임직원수는 6.2명이고 심사인력은 2.9명에 불과하다. 자본금 요건도 없어 사실상 누구나 P2P 업체를 세울 수 있다. 금융위는 2016년 자율 성격의 가이드라인만 내놨다. 바로 법으로 규제하면 시장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금융위는 늑장을 부리다 올 상반기에서야 관련 법안을 만들겠단 방침을 내놨는데 관련 법안이 국회를 언제 통과할진 알 수 없다. 금감원이 수사의뢰 말곤 아무런 제재를 할 수 없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금감원은 이번 점검결과 드러난 문제에 대한 개선사항을 금융위에 건의하기로 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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