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반문(反文) 연대

입력
2018.11.19 18:00
수정
2018.11.19 19:07
30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최근 정치 재개를 시사한 자리에서 “지금은 화합, 통합해 함께 마음을 모아 반문연대를 만들어 가는데 힘이 실려야 하는 시점”이라고 ‘반문연대론’을 적극 찬성했다. 신보수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는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도 “국민은 선명한 반문의 기치 아래 국민들을 통합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질서를 바란다”며 반문연대 동참 입장을 밝혔다. 보수 야권 곳곳에서 보수통합 논의가 ‘문재인 반대’의 두물머리로 합류하는 분위기다.

□ 김병준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자유한국당 지도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독선’을 반문연대 추진의 이유로 들고 있다. 일부 정치인은 ‘폭압정치’라는 말도 공공연히 입에 올리고 있다. 과거 적전 분열 양상을 보이던 야당이 일제히 반정부 투쟁으로 방향을 틀 때 쓰던 수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 전 시장이나 황교안 전 총리 등은 반문연대와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정치 재개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또한 상대의 실수를 득점 기회로 활용하겠다는 정치판의 오랜 관행을 넘어서지 못한 접근이다.

□ 하지만 반문연대의 출발점은 한국당 내 친박ㆍ비박 갈등이라는 게 중론이다. 김병준 비대위 체제에서 계파 갈등을 일소하겠다며 인적 쇄신의 칼을 들이대자 양대 계파가 우선 살아남기 위해 공동의 적을 내세워 하나로 합치자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내부 갈등을 잠재우기 위해 대외 전쟁으로 시선을 돌리는 병가의 전략과 다를 바 없다. 두 계파의 일치된 이해관계가 바른미래당까지 흡수할 기세로 확장되면서 반문연대는 보수 진영 정계개편의 화두로 떠올랐다. 이로써 강력한 인적 쇄신을 통해 보수의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김병준 체제의 초심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 특정 정치인을 고립시키는 연대는 대권 후보 다툼의 합종연횡에서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노태우 정권 말기 민정ㆍ공화계의 반 김영삼 연대나 참여정부 출범 직전 정치권 전체에서 감지됐던 ‘반 노무현’ 세력화가 대표적이다. 독자 세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강력한 경쟁자를 견제하기 위해 힘을 합치자는 취지였지만 대체로 실패하고 말았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얼마 전 “우리 정치사에서 반(反) 무엇을 한다고 해서 이긴 예가 없다”고 일갈한 게 반드시 바른미래당을 넘보는 반문연대의 위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김정곤 논설위원 jk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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