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어떻게 끝냈느냐가 중요하다

입력
2018.11.20 04:40
31면
대니얼 카너먼 ⓒTED
대니얼 카너먼 ⓒTED

살면서 누구나 힘든 일을 겪지만 어떤 사람은 이를 극복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그 아픈 기억 때문에 계속 괴로워한다.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 요소는 무엇일까? 이를 설명한 유명한 책이 김주환 교수의 ‘회복탄력성’인데, 최근에 다시 읽고 느낀 바가 있어 한 부분을 공유한다.

심리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인간이 ‘경험자아(experiencing self)’와 ‘기억자아(remembering self)’라는 두 개념을 갖고 있다고 한다. ‘경험자아’는 현재 내가 경험하는 것을 느끼는 자아로서, 지금 벌어지는 기쁜 일이나 쾌락을 즐기고 반대로 고통이나 괴로움을 피하려 한다. ‘기억자아’는 지나간 경험을 회상하고 평가하는 자아로서 ‘회상’은 이야기하기(story-telling)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 두 자아는 서로 일치하지 않는데,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더 중요한 것은 기억자아라고 한다.

카너먼 교수는 이 사실을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은 환자의 경험과 기억에 대한 연구결과’를 통해 밝혀냈다. 카너먼 교수팀은 대장내시경을 받는 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A그룹 환자들은 대장내시경 검사가 끝나자마자 내시경을 제거하게 했고, B그룹 환자들은 대장내시경 검사가 끝난 후에도 내시경을 제거하지 않고 한동안 놔두었다가 제거했다. A환자 그룹은 8분간 고통스러운 검사를 받았지만 고통의 순간은 급작스럽게 끝났다. B환자 그룹은 상대적으로 훨씬 더 긴 24분간이나 검사를 받았지만 고통은 점점 완화되다가 내시경을 제거한 것이다. ‘경험하는 자아’는 B그룹이 훨씬 더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기억하는 자아’의 평가는 완전히 달랐다.

검사를 마치고 1시간이 지난 후에 고통의 정도와 또 다시 검사를 받을 의향이 있는가를 물었을 때, 놀랍게도 B그룹이 검사를 훨씬 덜 고통스럽게 기억하면서, 재검사에 대한 의향의 비율도 A그룹보다 훨씬 높았다.

이는 A그룹의 경우 검사가 고통스러운 순간에 끝났기 때문에 계속 고통스럽게 ‘기억’하는 반면, B그룹의 경우에는 고통이 점차 감소하다 줄어들면서 끝났기 때문에 훨씬 덜 고통스럽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즉 어떻게 마무리되었느냐는 기억이 긍정적인 스토리텔링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

이혼 부부를 대상으로 전문 심리치료를 하는 의사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이혼에 이르는 과정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에 따라 재혼 성공율이 달라지더군요. ‘당신과 내가 더 이상 같이 살기는 힘들다, 그 점은 서로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된 데에는 나는 이런 잘못이 있었고, 당신은 이런 점이 아쉬웠구나.’라며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 대해 객관적 진단을 내린 이들은 재혼을 하더라도 다시 이혼할 확률이 훨씬 낮아집니다. 그러나 화가 나서 이혼을 하고 다시 재혼하는 사람들은 다시 이혼할 확률이 높습니다. 재혼은 분명 초혼보다 훨씬 상대방을 선택함에 있어 더 신중할 것이고, 이미 한 번의 아픈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에 따른 교육효과도 있을 텐데, 재혼의 이혼확률이 초혼 이혼확률보다 높은 것은 이처럼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지 않았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특정한 상황을 ‘어떻게 끝냈느냐’가 그 사람의 다음 선택과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설령 고통스런 상황에 부닥친 사람이라도 그것을 잘 마무리 한다면(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치유하는 시간을 갖고 그 속에서 교훈을 얻어냄을 의미), ‘경험자아’ 자체는 상처를 입었을 테지만 ‘긍정적인 기억자아’를 만들어 낼 수 있기에 다음 선택과 행동을 함에 있어 훨씬 긍정적이고 발전적일 수 있다. 역경이 내 인생의 밑거름이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조우성 변호사ㆍ기업분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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