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기대주 마크롱, 프랑스 자국선 사면초가

입력
2018.11.18 17:16
수정
2018.11.18 20:2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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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세 인상에 전국서 반대 시위

지지율 25%로 취임 때의 반토막

좌파 진영 “부자들의 대통령”

“다툼 즐긴다” 외교도 부정적 평가

2018년 7월 9일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프랑스 상ㆍ하원 합동연설에 참석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이날 연설 행사는 모든 정책을 직접 감독하고 통제하는 마크롱 대통령의 독선적 통치 방식, 이른바 ‘쥐피테르(Jupiter) 대통령제’ 성향을 잘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베르사유=AP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8년 7월 9일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프랑스 상ㆍ하원 합동연설에 참석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이날 연설 행사는 모든 정책을 직접 감독하고 통제하는 마크롱 대통령의 독선적 통치 방식, 이른바 ‘쥐피테르(Jupiter) 대통령제’ 성향을 잘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베르사유=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재선 포기 선언 이후, 유럽의 시선은 온통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지도력에 쏠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럽연합(EU) 흔들기에 맞서 마크롱 대통령은 독자 안보를 주창하며 유럽군 구상을 띄웠다. 유로존 통합 재정 개혁안도 파트너 독일의 지지를 얻어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마크롱 대통령이 영국의 EU 탈퇴를 전후해 통합 유럽의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짊어졌다”고 평했다.

하지만 대외적 존재감과 달리 국내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의 일방주의에 대한 반감이 거세다. 17일(현지시간)에는 ‘노란 조끼(Gilets Jaunes)’를 자칭하며 마크롱 정부의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대가 전국을 뒤덮었다. 집회 참석자들은 전국 주요 도로를 차량으로 서행하거나 보행하는 방식으로 평화 시위를 추구했지만, 남동부 사부아주 퐁드보부아상에서 1명이 차에 치여 숨진 것을 비롯해 1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프랑스 경찰은 이날 오후 2,000여개소에서 총 24만여명이 집회에 참석했다고 집계했다.

마크롱 정부는 석탄연료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유류세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프랑스 국민은 “언제는 경유가 (환경에) 좋다며 경유 차를 사라더니, 이젠 경유에 세금을 높게 물린다”라며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정부가 14일 유류세 인상으로 최대 타격을 입는 지역과 업계를 중심으로 총 5억유로(약 6,418억원)에 달하는 지원금을 내놓겠다고 발표했지만 성난 민심은 가라앉지 않았다. 17일 프랑스여론연구소(Ifop)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마크롱 정부를 지지한다는 응답은 25%에 불과했다. 지난해 5월 취임 당시 64%와 비교하면 반토막도 안 되는 참담한 지지율이다.

17일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노란 조끼' 시위대가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17일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노란 조끼' 시위대가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마크롱 정부는 당초 ‘좌도 우도 아닌 전진’을 표방하며 신중도 바람을 일으켰지만, 현재는 ‘좌우 구주류의 봉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좌파 진영은 마크롱 대통령이 노동개혁과 복지 축소만 추구한다며 그를 ‘부자들의 대통령’으로 규정했다. 우파가 기대한 경제지표 개선 등의 성과도 미진하다. 8월에는 마크롱 정부의 대표 정치신인 니콜라 윌로 환경장관이 사퇴했고 지난달에는 원로이자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격인 제라르 콜롱 내무장관이 물러나 그를 호위할 인적 구성도 흐트러진 상태다.

급기야 마크롱 대통령의 주특기로 꼽히는 외교에서조차 부정적 평가가 고개를 들었다. 영국 일요일판 옵서버는 18일자에 “마크롱 대통령이 화해보다는 다툼을 즐긴다”며 “유럽 분열을 가속화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 신우파 진영의 스타로 꼽히는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ㆍ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내무장관과 정면 충돌했고 한때 ‘브로맨스’로 불렸던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도 예전 같지 않은 실정이다.

프랑스 언론은 온갖 파열음 속에서도 마크롱 대통령이 독선적인 통치방식을 버리지 않았다며 비판하고 있다. 사소한 정책까지 직접 관여하는 마크롱 대통령의 ‘마이크로매니징’ 국정운영 때문에 내각 관료진은 사실상 엘리제궁의 명령만 기다리는 처지라고 지적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14일 TF1방송과 인터뷰에서 보기 드물게 “프랑스 국민과 지도자를 화해시키지 못했다”고 인정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예고한 대규모 개혁 노선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점 또한 분명히 못 박았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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