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X” “소추XX”… 10대 교실까지 점령한 남녀 혐오

입력
2018.11.1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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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설전 넘어 현실 속 충돌ㆍ싸움으로 격화

고교 교사 “몸싸움 말린 게 한두 번 아니다” 한숨

삽화 _송정근기자
삽화 _송정근기자

서울의 모 고교 1학년 담임교사 정모(35)씨는 요즘 반 아이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남ㆍ녀 학생이 편을 갈라 벌이는 말다툼 빈도가 최근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다.

얼마 전엔 머리를 짧게 자르고 학교에 온 여학생을 두고 남학생들이 “메갈(페미니즘 지지 여성을 낮춰 부르는 말)이다. 메갈”이라고 쑥덕이면서 사달이 일기도 했다. 이에 여학생들이 “소추(남성의 작은 성기를 비꼬는 은어) 주제에 말이 많다”고 한 바탕 대거리에 나선 것. 정씨는 “요즘 들어 서로를 자극하는 단어만 등장해도 얘들이 예민하게 반응한다”며 “말을 주고 받는 선을 넘어 몸싸움으로 번질 뻔한 걸 말린 게 한두 번이 아니다”고 한숨 지었다. 애초 이러한 성 비하 말은 온라인에 국한돼 있었지만 1020세대 사이에서 공격적인 행태로 일상 용어화하면서 남녀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메갈” “한남커플” 등 상대를 성적으로 조롱하는 말에서 남녀 혐오 갈등으로 비화했던 서울 이수역 주점 사건이 언제든 반복될 수 있을 만큼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서울의 모 대학교 2학년생 박모(21)씨는 “여름 전 만 해도 티를 내지 않던 남학생들이 지금은 ‘메갈 꺼져라’는 식으로 대놓고 공격한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고교 2학년생 장모(17)군도 “여학생들이 2학기 들어 ‘한남XX’라고 부르며 남자들을 노골적으로 한심한 사람 취급한다”고 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여성들의 불만이 올해 혜화역 시위 등을 계기로 거리로 터져 나왔고, 젊은 남성들은 또 이에 반감을 가지게 되면서 일단 말과 말이 부딪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5년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여성들이 만든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줄임말인 ‘메갈’이 남성들이 여성을 비꼬는 말로 온라인 상에서 유행을 탔다. 여성 역시 이에 ‘한남충(한국남성을 벌레에 빗대 지칭하는 말)’이나 ‘소추’라는 말로 대응했지만 문자로만 온라인 상 설전을 주고 받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익명의 온라인 상에서 분별없이 표출됐던 공격적인 성 비하 행위가 이젠 현실로 옮겨지면서 물리적 다툼으로 벌질 위험성이 커졌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실제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이제 교실에서 ‘메갈X’ ‘소추XX’ 같은 말들이 거칠게 오가고 몸싸움까지 이어지는 걸 보는 건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이상무 기자 alcl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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