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오토칼럼] 소비자보호의 사각지대 – 자동차부품결함

입력
2018.11.16 05:59
자동차 제조의 모듈화는 또 다른 숙제를 남긴다.
자동차 제조의 모듈화는 또 다른 숙제를 남긴다.

자동차는 2~3만개의 크고 작은 부품들로 이루어져 있고 각 부품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자동차를 움직인다. 따라서 자동차의 안전은 결국 개별 부품들의 안전성이나 신뢰성이 얼마나 보장되는지에 따라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지난 10여년 간 자동차 제조과정에서의 최대 화두는 ‘원가절감’이었고, 원가절감 방안 중 하나로 부품의 ‘모듈화’가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즉, 과거에는 자동차 제조사에서 차종 별로 부품을 설계한 다음 협력업체에 제조를 의뢰하는 방식이었다면, 최근에는 부품사에서 모듈 단위로 제품을 개발한 다음 이를 완성차 제조사에 납품하는 구조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같은 회사에서 나온 자동차라 하더라도 차종이 다르면 비슷한 부품을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동일한 그룹사 내의 자동차에서 동일한 디자인의 부품이 사용되는 것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품의 모듈화는 글로벌 자동차 부품기업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추세인데, 최근 보도된 ABS 모듈의 경우도 독일의 글로벌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다수의 완성차 제조사에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여러 완성차 회사에 동일한 모듈의 부품이 납품되다 보니 특정 부품에 결함이 생기면 하나의 완성차 회사만의 문제가 아닌 자동차 전체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모듈화 된 부품에 문제가 생길 경우 완성차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그 원인을 밝히기 어렵고 부품회사에 원인 파악을 의뢰하거나 공동으로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시간도 많이 소요될 뿐더러 경우에 따라서는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려워 결국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게 되거나 결함을 은폐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동일한 부품임에도 완성차 회사별로 부품결함을 시정하는 방법이 제각각이 되거나 일부 회사에서만 리콜을 실시하고 그렇지 않은 회사는 리콜조차 외면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몇 년 전 전세계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다카타 에어백 이슈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다카타 에어백 사태의 경우 완성차 회사별 리콜 방법과 기간이 제각각이었을 뿐만 아니라 같은 메이커에서도 국가별로 리콜 여부나 시기가 다르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렇다고 소비자가 부품회사를 상대로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의 법적인 대응을 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행법상 민사소송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상대방과 계약관계에 있거나 상대방의 행위가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되어야 하는데, 소비자는 완성차 회사와 계약관계에 있을 뿐 부품회사와 직접적인 계약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계약상 청구는 어렵고, 그렇다고 부품 결함을 곧바로 민법상 불법행위, 즉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단정하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위법행위를 입증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따라서 소비자로서는 완성차 회사를 상대로 손해를 배상 받을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에도 소비자에게 부품의 결함을 입증할 책임이 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완성차 회사에서 자발적으로 리콜을 하거나 적극적으로 손해를 배상하는 등의 조치를 하지 않는 한 소비자가 부품의 결함으로 입은 손해를 배상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자동차에서 부품의 결함, 특히 조향장치나 제동장치에서의 결함은 다수의 생명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그리고 그런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개정 자동차관리법에서 이 부분이 어느 정도 보완되었다고는 하나, 필자가 누차 지적한 바와 같이 그것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최근 불거진 일련의 자동차 결함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결함에 대한 자동차 제조사 및 부품사의 책임을 보다 엄격하게 묻고, 결함에 대한 입증도 소비자가 아닌 제조사 측이 하도록 하는 것과 같은 소비자보호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법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법무법인 제하 변호사 강상구

* 강상구 변호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연수원 수료 후 법무법인(유한) 태평양을거쳐 현재 법무법인 제하의 구성원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자동차 관련 다수의 기업자문 및 소송과 글로벌 자동차부품 기업에서의 파견 근무 경험 등을 통해 축적한 자동차 산업에 관한 폭넓은 법률실무 경험과, 자동차정비기능사 자격을 취득하면서 얻게 된 자동차에 대한 기술적 지식을 바탕으로 [강변오토칼럼]을 통해 자동차에 관한 법률문제 및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분석과 법률 해석 등을 제시하고 있다(skkang@jeha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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