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날 더 춥다? 부산은 맞고 서울은 틀리다

입력
2018.11.15 18:21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5일 오전 부산 동래구 중앙여고에서 수험생들이 응원을 받으며 고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5일 오전 부산 동래구 중앙여고에서 수험생들이 응원을 받으며 고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언제부터인가 대학수학능력 시험이 임박하면 ‘한파’가 관련 단어로 따라붙기 시작했다. 잔뜩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수험생 입장에서는 추위의 강도가 다른 사람보다 심하게 느껴질 수 있고, 일기예보에 ‘수능 한파’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했던 점도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높다.

시험 하나에 인생이 좌우되는 입시제도 때문에 시험 당일 날씨에 따른 수험생의 컨디션까지 고려해야 하는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정말 ‘수능 한파’라는 말처럼, 시험 때만 되면 추워지는 날이 많았을까.

#실제로는 평소보다 따뜻한 날이 조금 더 많았다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 분석한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수능 날에는 평소보다 추운 날보다 따뜻한 날이 조금 더 많았다. 다만 부산처럼 유독 평소보다 기온이 떨어진 곳이 있는가 하면 서울 등은 평소보다 더 따뜻한 날이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나 지역별로 큰 차이를 보였다.

한국일보가 15일을 포함해 기상청이 집계한 과거 26년간 서울 강릉 대전 대구 전주 광주 부산 제주 등 8개 지역의 수능 당일 아침 최저기온 수치(208개)와 시험일 기준 지역별 평년(1980~2010년) 최저기온을 비교한 결과 평소보다 더 따뜻한 경우는 105건으로, 추운 경우(103건)보다 조금 더 많았다.

먼저 8개 지역에서 수능 당일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경우는 총 29회로 전체 208건 중 14%가 조금 넘었다. 기온만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놓는다면 아주 추운 날은 그다지 많지 않았던 셈이다. 가장 기온이 낮았던 때는 1999학년도 수능 시험이 치러진 1998년 11월 18일로, 서울의 최저 기온이 영하 5.3도였다. 이날은 부산과 제주를 제외한 5개 지역 모두 영하로 떨어졌다. 그 밖에도 1997년, 2014년 수능일에 서울과 대전 지역 등이 영하로 떨어졌다. 그러나 추위를 단순히 기온으로만 정리하는 것은 부족하다. 수능 시험 당일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더라도 평상시보다 낮으면 충분히 춥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5일 오전 강원 춘천시 춘천고등학교에 마련된 강원도교육청 제49지구 1시험장에서 후배들이 수험생의 수능 선전을 기원하며 큰절을 하고 있다. 춘천=연합뉴스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5일 오전 강원 춘천시 춘천고등학교에 마련된 강원도교육청 제49지구 1시험장에서 후배들이 수험생의 수능 선전을 기원하며 큰절을 하고 있다. 춘천=연합뉴스

#수능한파? 부산은 맞고 서울은 틀리다

지역별로 평년, 즉 평상 그 맘 때 기온과 수능 당일의 기온 차이를 분석한 결과는 보다 다양하게 나타났다. 수능일이 되면 유난히 더 추웠던 ‘수능 한파’가 자주 나타난 대표 지역은 부산이었다. 총 26번의 수능 가운데 15일 치러진 2019학년도 수능 시험을 포함, 18번 평년보다 낮은 기온을 기록했다. 그 밖에도 대전(15회), 강릉ㆍ대구(14회) 등이 비교적 수능 날에만 추워지는 경향을 보였다.

△26년 간 수능 당일 최저 기온이 평소(평년)보다 낮았던 횟수

지역 횟수
서울 9
강릉 14
대전 15
대구 14
전주 13
광주 10
부산 18
제주 10

위도가 높은 서울의 경우 영하로 떨어지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았지만, 수능 날이 평소보다 더 따뜻했던 경우가 훨씬 많았다. 시험이 치러진 총 26일 중 17일이 평년보다 더 기온이 높았다. 2011년 11월 10일 아침 최저 기온은 10.9도로 평년 최저기온(5.1도)보다 5.8도나 더 높았다. 2015년에도 수험생들의 고사장 가는 길은 평년보다 5.5도나 따뜻했다. 서울 외에 광주, 제주 지역도 수능 시험 당일이 평소보다 따뜻한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평년 기온과 비교해 수능일 기온이 더 춥거나 따뜻했던 경우가 각각 13번씩 똑같았던 전주의 경우 ‘이상 기후’라고 불릴 법한 기록도 나왔다. 2015년 11월 12일 아침 최저 기온이 14.6도를 기록, 평년(5.1도) 보다 무려 9.5도나 높았다. 11월 같지 않은 포근한 날씨 속에 수험생들은 수능을 치른 것이다.

#수험생은 춥다

‘수능 한파’라는 표현은 수능 시험이 도입된 1990년대 유독 수능일 추웠던 경우가 많았던 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겠다. 수능이라는 입시제도가 사람들의 뇌리에 새겨질 당시에 유독 추웠던 경험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가설이다.

수능 시험이 처음 치러진 1993년(2차) 시험일에는 8개 지역 모두 평년보다 최소 1.4도에서 최대 6.6도까지 높은 것으로 나타나 포근했다. 하지만 1994~1999년까지는 상황이 달랐다. 6년 간 8개 지역의 아침 최저기온 수치(48개)와 평년 최저기온을 비교하면 단 8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평소보다 더 추웠던 것으로 나타났다. 26년 간 시험 당일 영하로 떨어진 경우는 29건인데 이 가운데 16건이 이 기간에 속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상학적으로는 물론이거니와 데이터 상으로만 봐도 굳이 ‘수능 한파’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수능과 한파를 연관 짓는 것은 심리적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고작 하루 동안 치러지는 시험으로 모든 학업 성과를 평가하고 앞으로의 인생 경로까지 규정하는 살벌한 입시제도 탓에 모든 수험생은 언제나 추울 지도 모른다. 수험생 모두들 정말 수고하셨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지난 23일 오전 포항 이동중학교 고사장 앞에서 수험생들이 고사장 입실을 앞두고 포옹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지난 23일 오전 포항 이동중학교 고사장 앞에서 수험생들이 고사장 입실을 앞두고 포옹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