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Talk] ‘세무조사 녹음권’ 전운 감도는 기재부-국세청

입력
2018.11.16 04:4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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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부터 국회가 내년 나라살림(세수)을 결정하는 세법 개정안에 대한 본격적인 심의에 들어갑니다. 세법 심의라고 하면 보통 야당이 개정안의 세부 내용을 하나하나 따지며 세율이나 과세범위를 손질하려고 하고 정부나 여당은 원안을 고집하는 풍경이 그려지는데요. 그런데 이번 심의 때는 여야가 아니라 정부 부처인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간에 정면 충돌이 벌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세무조사 녹음권 때문입니다.

기재부는 8월 말 발표한 세법 개정안에 내년부터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나갈 때 조사를 받는 납세자가 녹음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세무조사 때 조사관이 서류를 토대로 탈세를 입증해야 하는 규정을 따르지 않고 위압을 가해 탈세를 인정하게 하거나 추징목표를 채우기 위해 각종 압박을 가하는 등 세무조사 권한을 남용하는 행위를 막자는 취지입니다. 아무래도 조사내용이 녹음되면 조사관이 적법한 세무조사 범위를 넘어서는 일탈을 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안창남 강남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세무조사 권한이 남용되는 경우가 많다”며 “녹음권이 보장되면 과세관청이 납세자에게 암시적, 묵시적 압력을 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국세청은 ‘결사 반대’ 입장입니다. 조사관이 나중에 불리한 증거가 될 수 있는 녹음에 부담을 느껴 서면조사에 치중할 수밖에 없어 조사 시간이 늘고 행정적 부담이 가중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앞으론 잘하세요”라고 끝낼 경미한 사안도 무조건 법대로 과세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국세청은 주장합니다. 납세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녹음권이 오히려 납세자 부담을 증가시킨다는 논리지요. 실제 A세무법인 대표세무사는 “녹음권 보장으로 국세청이 정말 법과 원칙대로 조사를 하게 되면 오히려 납세자가 불리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특히 국세청은 기재부가 녹음권을 개정안에 담는 과정에서 당사자인 자신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고 반발합니다.

기재부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세제실에선 “정말 문제가 있었다면 국무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어야지, 왜 지금 와서 장외 여론전을 펼치느냐”는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최종 확정해 국회에 제출한 세법 개정안을 국세청이 반대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라는 겁니다.

공은 국회로 넘어갔습니다. 실제 국세청은 지난달 국정감사 전후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 의원(13명)들을 중심으로 녹음권 반대 입장을 강하게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기재부도 조세소위 의원들을 접촉했는데, 국세청이 한발 빨랐다고 하네요. 익명을 요구한 의원실 관계자는 “2011년 세법 개정안 심의 당시 국세 체납액을 징수하는 업무 일부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넘기는 방안을 두고 기재부와 국세청이 극심하게 충돌한 사안이 떠오를 정도로 ‘물밑’ 여론전이 치열하다”며 “이번 조세소위의 핵심 쟁점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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