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BTS 티셔츠 사건이 남긴 것

입력
2018.11.15 19: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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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BTS)이 지난 13, 14일 일본 도쿄돔에서 가진 'LOVE YOURSELF ~JAPAN EDITION~' 콘서트에서 공연하고 있다. 빅히트 제공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13, 14일 일본 도쿄돔에서 가진 'LOVE YOURSELF ~JAPAN EDITION~' 콘서트에서 공연하고 있다. 빅히트 제공

회색 머리칼에 인자한 표정을 지닌 일본의 언론인 이케가미 아키라는 우리나라로 치면 손석희 JTBC 사장만큼이나 유명한 ‘국민 언론인’이다. NHK에서 활동하다 은퇴해, 지금은 다양한 채널의 교양 프로그램에 다수 출연하고 있다. 주로 일반인에게 조금 어려운 교양이나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로 자주 등장한다.

지난해 TV아사히에서 이케가미가 진행하는 한 교양 프로그램을 보다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힌 일이 있었다. 방송의 주제는 ‘일본을 좋아하는 나라, 싫어하는 나라’로, 국제적으로 이뤄진 설문조사 결과 일본을 가장 좋아하는 나라는 대만이고 가장 싫어하는 나라는 한국이었다는 내용이다. 특이한 것은 둘 다 일본에 식민 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다는 것. 같은 식민지였는데 왜 두 나라는 일본에 대해 전혀 다른 감정을 갖게 됐을까?

이케가미는 두 국가가 모두 식민지 시대에 일본으로부터 경제적 근대화라는 혜택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철도나 도로를 건설해 줬고 산업도 발달시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만에는 이런 인프라가 지금도 남아있으나 한국은 6ㆍ25 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어 일본의 혜택을 모르게 되었다는 주장을 폈다. 군사정부 시절 내부의 불만을 돌리기 위해 반일 역사교육을 시켜 전국민에게 반일감정이 생겼다고도 했다. 일제의 과거 만행이나 현 정부의 과거사 부정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실상 “한국인은 일본에 대한 고마움도 모르고 반일 역사교육에 세뇌됐다”는 얘기나 다름 없었다.

이케가미는 길거리에서 마이크를 들고 원색적인 혐한 발언을 일삼는 일본 극우주의자들과는 다르다. 오히려 “나는 한국에도 많이 가 봤고 친한 한국 사람도 많다”고 하면서도 은근슬쩍 한국을 비하한다. 일본 미디어가 혐한 기류를 이용하면서 ‘은근한 반한감정’을 부추기는 이케가미 같은 지식인들이 지상파 TV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진짜 친한파는 방송에서 사라졌다. 특히 징용 판결로 한일 정부의 관계가 나빠진 요즘 같은 시기는 더 그렇다. 엄청난 시청률이 예상되는 방탄소년단(BTS)의 출연을 마치 일본 모든 방송사가 약속이라도 한 듯 취소한 것 역시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한다.

TV나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일본인들이 다 혐한인가 착각할 수 있지만 사실 평범한 일본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데 혐한론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게 평범한 사람들이 달콤한 한류 문화에 물들어서 과거 ‘욘사마’ 때처럼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원폭 티셔츠’ 파문을 방일 콘서트 직전에 터뜨려 판을 엎어버린 것은 그런 점에서 교묘한 작전 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원폭은 무고한 민간인과 한국인까지 희생된 끔찍한 행위로, 유엔에서 연설하고 글로벌 그룹을 꿈꾸는 이들이 입어서는 안 되는 티셔츠였다. 소속사가 ‘원폭 피해자’에게 사과한 것은 탁월한 대응이었다고 생각한다. 사과를 안 하고 슬쩍 넘어가거나 우리나라의 일부 극단적 반일 인사들처럼 거꾸로 일본을 공격했다면 “방탄은 반일”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평범한 일본인 ‘아미’도 주변의 시선에 힘들어 했을 수 있다.

현지언어 앨범까지 내고 일본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BTS가 앞으로도 계속 꾸준한 활동을 해서 혐오를 먹고 사는 일본의 혐한세력에게 진정으로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양국 국민이 상대국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이용하려는 일부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의 선동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지속적인 문화적, 인적 교류를 통해 상호 신뢰를 쌓아나가기를 바란다. 그래야 궁극적으로 과거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평가, 대응과 배상도 가능하리라 믿는다. 일본인 중에는 혐한론자도 있지만 이들의 혐오를 공격하는 ‘카운터스’도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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