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톺아보기] ‘정훈(政訓)’과 ‘정훈(精訓)’

입력
2018.11.16 04:40
29면

“사상과 이념무장을 강조했던 시절 ‘정치훈련(政治訓練)’의 약어로 만들어진 ‘정훈(政訓)’병과를 ‘공보정훈’(公報精訓) 병과로 바꾼다. ‘공보’ 표현을 넣어 국민과의 소통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또 ‘정치’를 떠올리게 하는 정(政)자를 정신을 뜻하는 정(精)자로 교체해 군 내부적인 정치적 중립 의지를 반영했다.”(한국일보, 2018.11.12.)

국방부가 병과 명칭을 개정하기로 했다는 기사의 한 부분이다. 명칭 개정의 취지는 시대변화에 맞지 않는 구시대적 명칭을 개선하고, 현재 수행 중인 병과의 임무를 정확히 표현하기 위한 것. ‘헌병’을 ‘군사경찰’로 바꾼 것이 그 취지를 잘 드러내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런 취지를 염두에 두면, 위의 내용에는 고개가 갸웃해질 수밖에 없다. ‘정훈(政訓)’을 ‘정훈(精訓)’으로 바꾸는 것은 명칭 개정 취지와 상관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한자를 혼용하여 문서를 쓸 게 아니라면, 동일한 음의 한자로 명칭을 바꾸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어떤 이름을 접할 때 그것의 한자를 연상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게 현실이기 때문. 더구나 보통의 한국인 중 기존의 ‘정훈’을 접하면서 ‘정치훈련’과 ‘政訓’을 떠올릴 사람은 얼마나 되겠는가.

이러한 문제는 전문 용어를 만드는 것과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다. ‘국제 표준화 기구(ISO)’에서 전문 용어를 만드는 원칙으로 가장 강조하는 것은 ‘투명성’의 원칙이다. 전문 용어가 가리키는 개념을 해당 용어를 구성하는 낱말을 통해 쉽게 유추할 수 있도록 배려하라는 뜻. ‘군사’와 ‘경찰’을 통해 그 임무를 짐작할 수 있는 ‘군사경찰’은 투명성의 원칙에 부합한 명칭이다. 시대에 맞는 표현인지의 판단 기준은 그 시대 보통사람의 언어 감각이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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