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대북정책 정치쟁점화의 무리수

입력
2018.11.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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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12일 북한이 비밀 미사일 기지 13곳을 운용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뉴욕타임스(NYT)는 북한이 16곳의 탄도미사일 기지를 비밀리에 운영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보도하면서 북미 간 비핵화 협상 무용론이 확산되고 있는 듯하다. 하원 다수당을 차지한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2차 정상회담 개최 계획을 취소하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협상에 관해서도 조사할 뜻을 밝히고 있어 CSIS 보고서가 민주당의 공세 근거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대한 불신을 조장해 북미 간 대화나 협상 보다는 대북 압박을 강화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읽힌다. 탄도미사일 기지는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면 폐기돼야 할 대상이지만 미 언론이 한미 군사 당국이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던 내용을 공개하면서 북한이 ‘대단한 속임수(great deception)’을 쓰고 있다고 한 표현은 북한의 비핵화 진성성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북미 간 첫 핵합의였던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 이후 미국 내 대북 강경파들은 틈만 나면 북한의 비밀 핵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에게는 사실 여부가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의혹을 제기하면 여론을 주도할 수 있었고, 여론이 확산되는 동안에는 적어도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사실상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이처럼 미국의 대북정책 결정 과정에서는 의혹 제기만으로도 분위기를 바꿔 놓는 경우가 많았다. 1998년 8월 미국의 강경세력들은 금창리 지하시설이 핵관련 시설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북미 간 협상 타결에 의해 현지 사찰이 이뤄졌으나 1999년 6월 “금창리 지하동굴 안에서는 이미 건설되었거나 아니면 건설 중인 핵 원자로는 물론 재처리 시설도 없으며 이런 목적을 위해 설계되지도 않았다”고 미 국무부가 공식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의혹이 가짜로 판명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의혹 제기는 거의 1년 동안 대북정책을 마비시켰다. 미국내 강경파들은 자신의 정체성(identity)를 확인하거나,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다는 것을 입증이나 하려는 듯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논쟁을 유발했다. 이들은 이런 행위 자체를 미국 국익을 위한 애국적 행위로 연결시킴으로써 발언의 진위 여부나 부정적 파급효과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현재 야당인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 실패를 부각시키기 위한 대표 사례로 대북정책을 정치쟁점화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 제네바 기본합의 체결 당시에는 야당이자 의회 다수당이었던 공화당이 민주당 클린턴 정권을 공격했다면, 이제는 반대 상황이 된 것이다. 미국내 대북 강경세력들의 의혹 제기와 같은 공세가 이어진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도 다시 소극적, 현상유지적 방향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서두를 것 없다”며 속도 조절론을 펴고 있는 점이 걱정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 제약 탓에 대북정책 추진동력을 소진할 가능성도 대비해야 한다. 북미관계 개선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남북관계의 본질적 개선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미국내 언론 플레이나 의혹 제기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미국 조야를 대상으로 논리적이고 일관성 있는 대북정책 논리를 개발하고, 꾸준하게 설득하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김정은 위원장도 이런 때일수록 비핵화 결단에 대한 진정성을 더 과감하게 보여 주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과거 무수한 실패 사례가 입증하듯 북한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면서 제재와 압박 일변도로 다시 핵과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한 지금 상황에서는 바람직한 접근법도 아니고, 성공 가능성도 낮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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