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채 폭행… 2년 임금 15만원… ‘제2ㆍ제3 양진호’ 판치는 IT업계

입력
2018.11.13 17:47
수정
2018.11.13 23:45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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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ㆍ머리채 당기며 성추행… 과로에 폐 절제한 직원 해고

근로기준법 개정 ‘무료 야근’ 막고 노동자 심층조사 정례화를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직원에게 폭행과 폭언을 하는 모습. 뉴스타파 보도 캡처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직원에게 폭행과 폭언을 하는 모습. 뉴스타파 보도 캡처

한 IT 스타트업에서 지난해 5월까지 근무한 디자이너 김현우(25)씨의 2년 반은 악몽 그 자체였다. 그는 회사 대표로부터 사무실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자고 편의점 음식을 먹는 숙식생활과 학업포기를 강요당하며 과로에 시달렸다. 재직기간 그가 받은 대가는 ‘지분을 주겠다’는 구두 약속과 15만원이 고작이었다. 대표가 사소한 트집을 잡아 폭력을 휘두르는 일도 잦았다. 김씨는 사비로 미니 선풍기를 구입했다가 입술이 터지도록 맞았고, 다른 동료는 셔츠 색상을 잘못 입고 출근했다는 이유로 골프채로 구타를 당했다.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최로 열린 ‘IT노동자 직장갑질ㆍ폭행피해 사례보고 간담회’에서는 최근 직원 폭행과 엽기적인 갑질 행태로 국민적 공분을 산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과 같은 사례가 업계 내 만연하다는 고발이 쏟아졌다. 4차 산업혁명 등 대한민국 경제와 산업 발달을 선도할 IT인재들이 폭력적이고 후진적인 기업 문화에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의원실과 IT노조가 최근 실시한 ‘2018 IT노동실태조사’에서 IT노동자들은 △심각한 장시간 노동 △파견 및 하도급 관행 △허울뿐인 프리랜서 노동실태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호소했다. 설문참여자 503명 중 23.26%는 상사의 언어폭력, 20.28%는 위협이나 굴욕적 행동을 당했다고 답했다. 신체적 폭력을 당한 경우는 11명이었고 왕따 및 괴롭힘, 성희롱ㆍ성폭력 피해자도 각각 24명과 16명에 달했다.

열악한 근로조건과 이로 인한 스트레스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졌다. 매출 4,000억원을 기록하며 스타트업 성공 신화를 쓴 에듀테크기업 S사에 근무했던 웹디자이너 장민순씨는 직장 내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지난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시간 노동에 지친 장씨는 우울증 치료를 위해 한 달간 휴직하고 돌아온 뒤부터 매일 반성문 형식의 업무보고를 올려야 했고, 채식주의자임에도 육식을 강요당했다고 한다. 이날 증언에 나선 고인의 언니는 “과로 자살은 회사가 개인에게 가한 극한의 폭력”이라며 “죽음에 이르게 만든 회사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IT업계 갑질사례 그래픽=신동준 기자
IT업계 갑질사례 그래픽=신동준 기자

이날 발표된 16가지 피해사례는 외국계와 대ㆍ중소기업, 스타트업 등 모든 형태의 기업에 분포돼있었다.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의 솔루션개발사 D사 사장은 체격 좋은 직원에게 “돼지 새끼”라고 폭언하거나 남성 직원의 성기 또는 여성 직원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볼에 뽀뽀를 시키는 등의 성추행을 일삼았다. 한 대기업의 IT 계열사에 근무했던 직원은 살인적인 업무 스케줄에 면역력이 떨어져 폐의 절반을 잘라내고도 일방적 권고사직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 외에 외국계 기업의 군기잡기 목적 폭언, 노예계약과 다름 없는 프리랜서 계약 등의 사례가 보고됐다.

간담회 말미에 발제자로 나선 IT노조 관계자들은 법과 제도 정비를 통한 보호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환민 직장갑질TF 팀장은 “양진호의 제국은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다”며 “정부는 근로감독 강화, 노동자 심층조사 정례화 등의 제도개선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고질적인 장시간 근로 문제 해결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 필요성이 제기됐다. IT노조 법무원 장재원 변호사는 “지금처럼 노동자에게 야근을 입증할 책임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노동시간을 정확히 기록하고 보존하도록 법률로 강제해야 ‘무료 야근’ 관행이 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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