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기ㆍ꼬르륵 소리도 조심… 수능감독관은 ‘극한업무’

입력
2018.11.14 04:4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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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감독관이 수험생에게 시험 전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수능 감독관이 수험생에게 시험 전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하고 싶어 하는 일도 아닌데, 일 자체가 곤욕이죠.”

제주의 고교 교사 정모(31)씨는 여느 수험생 못지않게 긴장했던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 감독관 경험에 몸서리친다. 휴식과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이동은커녕 몸 한번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오전 8시40분부터 9시간 이어진 시험시간에 작은 소리라도 냈다가 수험생들이 시험을 망쳤다고 항의할 수도 있고, 일이 커지면 소송까지 걸릴 수 있다는 얘기에 잔뜩 주눅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정씨는 “옷은 정전기가 나지 않는 것으로 준비하고, 무음시계도 따로 지참했다”며 “혹시나 ‘꼬르륵’ 배에서 소리가 날까 봐 시험날 아침 식사도 걸렀다”고 했다.

2019학년도 수능(15일) 시험감독관을 맡게 된 전국 중고등학교 교사들의 걱정이 시험이 다가올수록 쌓여가고 있다. 대부분 강제로 끌려 나온 것도 억울한데, 시험감독이라는 만만치 않은 육체ㆍ정신적 고통까지 져야 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

가장 큰 걱정은 극단 상황이다. 수험생 모두 예민한 상태라 감독관의 사소한 실수 하나가 송사로까지 번질 수 있다. 실제 2015년 수능 때 당시 소지가 가능했던 디지털시계를 압수당한 수험생이 감독관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법원은 수험생 손을 들어줘 500만원을 물어주라고 판결했다. 10년 넘게 감독관을 맡아 온 고교 교사 조모(56)씨는 “예전에 수능시험장 바닥이 나무 재질이었는데 살짝 발을 디디면서 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항의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작은 실수로도 민원은 물론 소송에 휘말릴 수 있어 웬만하면 감독관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덧붙였다.

중학교 교사들은 더 긴장한다. 모의고사 시험감독을 몇 번이라도 해본 고교 교사보다 경험이 부족해서다. 서울 소재 중학교 교사 백모(31)씨는 “수능 전날 감독매뉴얼을 받아 나름 숙지하지만, 당일에는 어쩔 수 없이 허둥댄다”라며 “실수로 학생들이 시험 시간을 1분이라도 손해 볼까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당연히 기피 업무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다. 지원자가 없으니 시도교육청이 학교로부터 받은 교사 명단을 보고 차출을 하기 때문. “연차가 낮은 순부터 차례대로 뽑힌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지만 딱히 거부할 방법은 없다.

교육부 관계자는 “부정행위 적발로 발생한 소송 등은 법률지원을 하고 있다”라며 “수능시험장 감독관은 많이 필요한데, 친인척 중 수험생이 있거나 몸이 아픈 교사 등을 빼면 인원을 다 충원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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