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IT 업계 ‘양진호’ 갑질, 조속한 법 개정으로 근절을

입력
2018.11.1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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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적 직장 내 갑질로 구속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같은 행태가 IT 업계 곳곳에 적지 않다는 사실이 13일 국회에서 열린 ‘IT 노동자 직장 갑질ㆍ폭행 피해 사례 보고’에서 드러났다. 이날 보고회에서는 “개인 물품을 소유할 수 없게 하고, 미니선풍기를 샀다고 맞았다” “셔츠 색상을 잘못 입고 출근했다고 골프채로 맞았다” “한심한 모습을 보였다고 동료끼리 때리도록 했다” “사장이 남성 직원의 성기를 잡거나 여성 직원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볼에 뽀뽀를 시켰다”는 등의 증언이 잇따랐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례가 일부가 아닌 IT 업계 전반에 만연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조사결과도 공개됐다. 500여명을 대상으로 한 ‘IT 업계 노동실태조사’에 따르면 5명 중 1명이 상사로부터 언어폭력이나 위협ㆍ굴욕적 행동을 당했다. 신체 폭력을 당한 경우는 11명, 왕따 및 괴롭힘은 24명, 성희롱ㆍ성폭력 피해는 16명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절반 이상이 최근 1년 사이 자살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다고 답했을 정도다.

직장 내 괴롭힘은 어제오늘 일도, IT 업계만의 문제도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를 보면 직장인의 73%가 이 같은 괴롭힘을 경험했고 12%는 거의 매일 당하고 있다. 전체 취업자의 80% 가량이 직장 내 괴롭힘에 잠재적으로 노출돼 있다고 한다. 최근 IT 업계 사례가 불거진 데는 양 회장 사건 영향도 있지만 관련 법규조차 무시하는 업계의 후진적 노동 관행 탓이 크다. 단기 목표 달성을 위한 무리한 업무 추진, 벤처 이미지를 앞세운 장시간 노동 등 최저 노동기준을 정한 법규에 못 미치는 잘못된 노동문화를 서둘러 개선해야 한다.

정부는 7월 ‘직장 괴롭힘 근절대책’을 통해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신고 대상ㆍ방법ㆍ절차 의무화, 범정부 갑질 신고센터 통합 운영, 신고 접수된 사업장 직권조사 강화 등의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당시 대책의 핵심이었던 가해자 형사처벌,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줄 경우 사용자 처벌이나 직장 내 괴롭힘 산재 인정 등은 관련법 개정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직장 내 괴롭힘 근절을 위해 이미 발의된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통과를 국회가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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