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헌병과 군사경찰

입력
2018.11.1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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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한 직후 무력을 앞세운 강압 통치 시스템을 구축했다. 헌병과 경찰의 무력을 기반으로 한 이른바 ‘무단 통치’다. 조선의 백성들은 군도를 찬 순사와 헌병 오장(伍長)의 등쌀에 기를 펼 수가 없었다. 소설가 이문열씨는 오래전 “어렸을 적에 어른들이 가장 치를 떨며 회상하던 친일 부류 가운데 ‘겐페이 고조’가 있었다”고 쓴 적이 있다. 헌병 오장의 일본어 발음인 겐페이 고조는 하사관 정도의 계급인 분대장을 가리키는 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 헌병 가운데는 일제의 앞잡이로 악명을 떨친 조선인들도 적지 않았다. 반민특위 조사에서 같은 민족을 상대로 저지른 이들의 죄상이 일부 밝혀지고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일제 치하 순사들이 해방 이후 경찰 조직에 흡수된 것처럼 반민특위가 흐지부지되면서 헌병 출신들도 경찰 계급장을 달고 버젓이 활동했다. 헌병 오장 출신의 신상묵과 그의 부하였던 박종표가 그랬다. 마산 앞바다에서 떠올라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김주열 열사의 시신을 유기한 장본인이 당시 마산경찰서 주임이던 박종표다. 그의 상사였던 신상묵은 나중에 전북 경찰국장까지 지냈다. 2004년 신상묵의 친일 이력이 뒤늦게 공개되면서 아들인 신기남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이 사퇴하는 파동이 일었다.

□ 헌병(military police)은 영어 표기에서 드러나듯이 군대 안의 경찰활동이 주된 임무다. 중세 초기 프랑스에서 귀족으로 구성된 국왕의 친위대에게 경찰권을 부여한 데서 유래했다는 게 정설이며 영국과 미국에서 근대적 제도로 확립했다. 일본은 프랑스의 헌병 제도를 본떠 정식 병과로 채택했다. 우리는 1900년 일본 모델을 모방한 헌병사령부를 설치하면서 제도를 도입했지만 현재 헌병 병과는 1947년 국방사령부의 군감대(軍監隊)에 뿌리를 두고 있다.

□ 국방부가 일제 강점기의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하기 위해 헌병이라는 용어를 ‘군사경찰’로 바꾸기로 했다. 하지만 일부에서 현재의 헌병 병과가 대한제국이 아닌 해방 이후 군감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이유로 개명을 반대하고 나서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군정 시기에 도입한 헌병 병과라서 ‘미국식 헌병’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헌병과 함께 떠오르는 ‘헌병 오장’의 오싹한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개명 자체는 옳은 선택이 아닌가 싶다.

김정곤 논설위원 jk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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