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다시 광릉 숲에서] 땅으로 돌아가다. 새로운 시간을 기다리며....

입력
2018.11.14 04:40
29면
버섯자실체는 찾아내지 못했지만 땅속에 존재했던 버섯들. 붉은달걀버섯(Amanita caesareoides ; 식용) (사진 국립수목원)
버섯자실체는 찾아내지 못했지만 땅속에 존재했던 버섯들. 붉은달걀버섯(Amanita caesareoides ; 식용) (사진 국립수목원)

온 산야를 유난히 곱고도 화려한 단풍 빛으로 물들였던 이 가을의 잎새들은 더욱 깊은 빛깔을 우려내며 낙엽이 되어 떨어집니다. 지금은 땅위에서 마지막 감동을 주고 있지만 겨울은 다가오고 이내 그 흔적들은 마음에 혹은 사진에 담겨 남겠지요. 낙엽들은 서서히 분해되며 긴 시간에 거쳐 흙의 일부로 돌아갈 것입니다.

붉은싸리버섯(Ramaria formosa; 독버섯이나 염장하여 먹기도 함)
붉은싸리버섯(Ramaria formosa; 독버섯이나 염장하여 먹기도 함)

겨울의 땅속에선 이 낙엽의 흔적까지 양분으로 삼아 어떤 생명들이 때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한해에 생을 마감해야 하는 풀은 씨앗으로, 여러 해를 사는 풀들도 땅속줄기에 달린 눈을 달고서, 지상부의 추위를 견뎌내느라 단단해진 나무들마저도 가지에 달린 겨울눈에 내년을 담아 견뎌 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씨앗의 모습으로 이동하다 땅속에 떨어져 좋은 계절이 오기를 기다릴 것입니다. 땅속에는 발아력을 유지한 채 남아있는 수많은 식물씨앗들이 있어 이를 매토종자(buried seeds)라고 하며 토양씨앗은행이라고도 하지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가리왕산 활강장을 만들며 사라질 흙을 가져와 다시 그곳에서 살던 식물들을 키워낼 수 있었던 것도 다 이 덕분입니다. 전 식물을 공부하는 사람인 까닭에 땅속 세상의 주인공들 역시 이러한 나무나 풀들의 뿌리와 씨앗들이려니 했습니다.

장미광대버섯(Amanita pallidorosea; 독버섯)
장미광대버섯(Amanita pallidorosea; 독버섯)

며칠 전 국립수목원에서 버섯을 연구하는 김창선박사의 연구결과 발표를 들으며 크게 놀랐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버섯은 그 일부분인 자실체이고 땅속에는 많은 균사들이 있다가 조건이 맞을 때 솟아오릅니다. 그 팀의 연구는 우리나라 주요 수종별 숲에서 어떤 종류인지 알 수 없었던 땅속 버섯균사의 DNA를 추출하여 얼마나 다양한 종류가 있는지, 그리고 이를 이미 나와 있는 DNA정보와 비교하여 어떤 종류들인지를 알아내는 막대한 노력과 기술이 필요한 첨단 연구였습니다. 점봉산의 물푸레나무숲의 경우 땅위에 출현해 눈에 보이는 버섯자실체는 24종류였는데 토양속에서는 6,240운영분류단위(OTU)가 구분되었습니다. 260배가 넘는 다양한 잠재버섯 자원이 때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지요. 그 중에서 DNA정보가 있는 20종류의 균주를 분리하여 배양해보았더니 14종류(70%)가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미기록종이었습니다. 아직 어떤 종류인지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데이터속에는 가장 값비싼 버섯으로 알려진 송로버섯집안(Tuber)도 있는 것으로 나타나 앞으로 갈 길이 멀기는 해도 설렘을 주더군요. 땅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미래의 가능성이 잠재해있는지 알려주는 참으로 멋진 연구결과였습니다.

송이 (Tricholoma matsutake ; 식용)
송이 (Tricholoma matsutake ; 식용)

나무의 종류에 따라 함께 살고 있는 고등균류(버섯포함)종류도 상당히 달랐습니다. 땅속과 땅위에 서로 다른 생물종들이 서로 얼마나 유기적으로 얽혀있는지를 알려주었습니다. 하긴 우리가 그냥 버섯이라고 부르는 종류에서도 표고버섯이나 느타리버섯처럼 죽은 동식물에서 양분을 얻는 부생, 소나무가 있어야 살아가는 송이버섯처럼 공생, 동충하초나 차가버섯처럼 다른 생물의 양분을 가로채며 기생하는 종류까지 다양한 것을 보면 다양한 생물들 그리고 이들이 무기적인 요소와 연결되어 사는 그 세상은 얼마나 무궁한지 조금은 느껴지더라고요.

낙엽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버섯으로 이어졌습니다. 더 겸손하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의 생명들을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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