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니코스 벨로야니스(11.15)

입력
2018.11.15 04:40
30면
구독
그리스 공산당 출신 레지스탕스 영웅 니코스 벨로야니스가 내전 패배 후인 51년 오늘 사형 선고를 받았다. 독일 베를린의 그의 동상.
그리스 공산당 출신 레지스탕스 영웅 니코스 벨로야니스가 내전 패배 후인 51년 오늘 사형 선고를 받았다. 독일 베를린의 그의 동상.

2차 대전 유럽 전역을 통틀어 파죽지세의 나치ㆍ파시즘 군대에 맞서 제대로 저항한 국가는 영국을 빼면 그리스가 거의 유일하다. 그리스는 유럽 남부를 장악하려던 무솔리니의 군대를 물리쳐, 중ㆍ북부와 러시아로 나아가려던 나치 초기 전략에 심각한 차질을 빚게 했다. 그리스가 나치 독일에 점령된 것은 1941년 5월이었다.

전쟁기간 내내 유럽 전선에서 게릴라 저항이 가장 활발했던 곳 중 한 곳도 그리스였다. 터키와의 오랜 전쟁으로 전투 경험이 있는 게릴라 자원이 상대적으로 풍부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들 게릴라의 주력은 41년 6월 나치의 소련 침공 직후 활동을 시작한 그리스공산당(KKE)이었다. KKE는 41년 9월 대중조직 민족해방전선(EAM)을 결성하고 무장조직인 그리스 인민해방군 ‘ELAS’를 출범시켰다. 1918년 사회주의노동자당을 시작으로 성장한 그리스공산당은 대공황을 거치며 보수 왕당파와 집권 공화주의자들, 자생적 파시스트 정당의 틈바구니에서 서민ㆍ청년들의 지지 속에 성장했고, 전시 게릴라 활약을 거듭하며 광범위한 지역에 마을 단위 인민위원회를 두고 실질적인 전시 정부역할을 수행했다. 44년 무렵 KKE 지지자는 200만 명에 육박했다. 하지만 전쟁의 승기를 잡은 연합국, 특히 영국은 KKE의 약진을 경계해 우파 게릴라에게만 무기를 지원했고, 게릴라들은 이념ㆍ진영에 따라 전쟁과 내전을 동시에 치러야 했다.

1944년 10월 나치 철군 이후 격화한 그리스내전은 49년까지 이어졌다. 그사이 소련은 루마니아를 차지하는 조건으로 그리스에 대한 영향력을 포기했고, 지원을 잃은 그리스공산당은 고군분투 끝에 49년 패배했다. 그리스의 2차 대전도 사실상 그해 끝이 났다.

니코스 벨로야니스(Nikos Beloyannis, 1915~1952)는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아말리아다 출신 좌익 지식인이자 ELAS의 핵심 지휘관 중 한 명으로, 전시 레지스탕스 시기와 전후 내전기의 활약으로 큰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전후 영국이 중용한 옛 나치ㆍ파시즘 잔당들이 대거 포진한 우파 정권에 의해 50년 체포돼 51년 11월 15일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이듬해 3월, 피카소, 찰리 채플린, 장 폴 사르트르 등 명사들의 국제적인 구명운동에도 불구하고 처형당했다. 한때 그가 망명해 지냈던 헝가리 페저(Fejer) 카운티의 마을이 그의 이름을 따 벨로야니츠(Beloiannisz)가 됐다. 최윤필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