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성공조건

입력
2018.11.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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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가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개 정당 원내대표 및 대변인이 함께 한 자리였다. 단순히 보여 주기식 모임이 아니라 12개 항목에 대해 실질적인 합의를 이끌어낸 성공적인 회합이었다는 평가다. 물론 선거 연령 하향 조정이나 선거제도 개혁 등과 관련된 내용은 합의라고 보기에는 너무 모호하다. 또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6개월이 지나서야 이루어진 모임이라는 점에서 조금 뒤늦은 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한국 정치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협치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가 잘 운영될 것이라고 기대하기에는 섣부른 것 같다. 유의미한 합의를 이끌어 냈다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오류를 크게 개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시점이 문제다. 지난해 5월 초 대통령 선거 직후 구상되었던 협의체가 이미 시간이 한참 흐른 뒤인 올해 8월 초 청와대 오찬을 통해서야 구체화했다. 정권 초기 협치의 필요성에 대한 절박함과는 대조적으로 실질적인 시행은 뒷전으로 밀린 것이다. 더구나 이번 회의 역시 국회 예산 심의를 앞둔 상황이라는 정치적 고려가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 매 분기마다 한 번씩 정례적으로 개최하자는 약속과 달리 다음 회의 시점을 명시하지 않은 것도 실망스럽다. 장기적 국가 발전 전망에 대한 합의가 아닌 단기적 정치적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활용될 여지가 남아 있는 것이다.

둘째, 협치를 위한 기존 제도를 돌아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동안 한국 정치권에 협치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여야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하여 의견을 듣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국무총리가 총괄하는 고위 당정협의회 및 각 행정 부처와 여당의 정책위원회 사이의 정책협의 기구인 부처별 당정협의회 등에 관한 규정이 오래 전부터 마련돼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의 여야 대표 회동은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고 나서야 사후약방문 격으로 이루어진 성격이 강했다. 당정협의회는 국무총리 훈령에 따라 매월 정기적으로 개최하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오히려 모임 개최 자체가 예외적이었다. 당정협의회가 어쩌다 이루어지는 경우에도 야당을 제외한 집권당과 정부 부처 간 밀실 회합적 성격이 짙었다. 이번 협의체 역시 이러한 과거의 문제를 개선하고, 기존 제도들의 실질적 운영을 보장하거나 확장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지 않았다는 한계를 보인다. 협치가 성공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관련 제도를 정비하려는 노력과 함께 진행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이번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가 기대와 달리 사상누각이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지점이다.

법률안이나 예산안과 관련된 한국 헌법의 규정은 정부와 국회 간 협치를 필수 요건으로 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소위 ‘의원내각제적 요소’ 때문에 그렇다. 대통령제에서는 보기 힘든 법률안 발의 및 예산안 수립과 관련된 정부 역할은 국회와의 협치가 없이는 제대로 수행되기 힘들다. 중요한 정부 입법과 예산수립 과정에서의 국회 배제, 특히 야당의 배제는 국회 내에서 발의된 법안이나 예산이 심의될 때 종종 정부와 국회 간 또는 여당과 야당 간 심각한 갈등을 수반한다. 그동안 국회 내 여야 간 극한적 투쟁이나 법안 및 예산 심의의 지연이 끊이지 않았던 원인 가운데 하나를 이러한 협치의 부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이번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는 그 성과만을 선전하는데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협의체가 안정적으로 발전해 갈 수 있도록 협치와 관련된 제도적 규정을 정비하고 투명한 절차를 마련하는데 주의를 기울였으면 한다. 이런 조건이 달성될 때 협의체 운영을 위한 상호 신뢰가 쌓일 것으로 보인다.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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