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파이를 나눠야 한다

입력
2018.11.13 04:40
31면

현재 한국 영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한 마디가 있다면 무엇일까? 1999년 ‘쉬리’의 흥행 폭발 이후 강제규 감독이 수많은 인터뷰에서 반복했던 말을 꼽고 싶다. “파이를 키워야 한다.” 이 말은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1998년 ‘타이타닉’이 세웠던 흥행 기록을 돌파한 ‘쉬리’는 단지 관객이 많이 든 영화가 아니었다. 이 영화는 한국 영화를 보는 관객의 수는 정해져 있다는 통념을 무너트렸다. ‘유사 할리우드 전략’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쉬리’는, 역으로 생각하면 할리우드 영화를 주로 봤던 관객을 한국 영화 상영관으로 끌어들였다. 말 그대로 파이를 키운 셈이다.

강제규 감독의 관점은 명확했다. 한국 영화가 제대로 산업화하려면, 일단 양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정된 파이를 나눠 먹는 것보다, 파이의 양 자체를 키우는 공격적 방식이 한국 영화를 발전시킨다는 논리였다. 파이가 늘어나야 다양한 영화도 등장한다는, 양적 증가가 질적 변화로 이어진다는 주장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쉬리’는 한국 영화가 ‘산업’에 대해 제대로 인식했던 첫 번째 사건이었다. 조짐은 있었다. 1990년대 초 충무로에 대기업 자본이 들어오면서 이른바 ‘기획 영화’가 생겼다. 1980년대까지 국가 통제 아래 토착 자본으로 제작되던 한국 영화는 ‘콘셉트’에 의해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파이가 커지진 않았다. 이때 ‘쉬리’가 나왔고, 이 영화가 키워놓은 파이 위에서 한국 영화는 르네상스를 맞이하기 시작한다.

‘쉬리’ 이후 약 20년이 흘렀다. 파이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1999년 한국 영화 관객 수는 2,172만명, 매출액은 1,128억원이었다. 2017년 통계를 보면 1억1,391만명이 한국 영화를 보았고 9,027억원의 돈을 벌어들였다. 관객은 5배, 매출은 8배 늘었다. 2000년 이후 한국 영화 점유율은 웬만하면 50퍼센트 이하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쉬리’의 전략은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물어야 한다. 성공의 열매를 가져간 사람은 누구인가? 대답하기 쉽지 않다. 이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자본이 축적되고 노동에 대한 가치 평가도 높아졌겠지만, 누가 파이를 먹었는지 명확하게 규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쉬리’의 패러다임은 진작에 무의미해졌다는 사실이다. 2000년대에 가파르게 상승하던 곡선은 2010년 이후 그 각도가 무뎌졌다. 더 이상 관객 수도 매출액도 “파이가 커졌다”는 느낌이 들 만큼 늘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새로운 패러다임은 아직도 등장하지 않았다. 일종의 아노미 현상이며, 혼란을 넘어 퇴행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2000년대 초 장르 실험과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한국의 주류 상업영화는 어느새 ‘안전빵’ 제일주의를 추구하며 비슷한 영화들을 찍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맛의 파이만 만들어내는 제과점이 된 셈이다. 게다가 파이가 커지는 과정에선 예상치 못했던 독과점이라는 공룡이 등장해 대부분의 파이를 먹어 치우는 현상마저 나타났다.

“파이를 키워야 한다.” 이 대명제를, 양적 성장에 대한 신뢰를, 버릴 때가 되었다. 지금은 파이를 나눠야 한다. 우린 지나치게 긴 시간 동안 ‘쉬리’의 세계관 속에 안주해 왔다. 숫자가 올라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동력은 10년 정도는 산업을 끌고 갔지만, 이후 모순들이 드러났고 자칫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젠 파이의 크기가 아니라 분배가, 파이의 양만큼 질이, 파이의 규모보다는 그 레시피가 중요하다. 이것은 늦은 만큼 절실한 깨달음이다. 제대로 된 생태계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창조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으며, 그럴 때 비로소 진짜 성장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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