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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고시원 화재 사망 조모씨 부친
“최근 우체국 취직한 아들, 돈 덜 쓰고 모으려다”
11일 오전 화재로 7명이 사망한 종로구 국일고시원 앞에 시민들의 추모 꽃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서울에 간 8년 동안 고시원에서만 살았는데….”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 화재 희생자 조모(35)씨의 아버지는 서울 생활 내내 고시원만 전전했던 아들만 떠올리면 눈물이 앞을 가려 말문도 막혔다. 조씨는 서울에서 당장 일거리를 구하기 힘들어 일용직으로 건설현장을 떠돌다 최근에서야 우체국에 자리를 잡았다. 이마저도 비정규직. 월급도 넉넉하지 않고 언제 잘릴지 몰랐다. 조씨 아버지는 이런 아들을 두고 “가급적 돈을 덜 들이고 착실하게 모으려고 고시원에서 살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일고시원은 조씨가 지낸 두 번째 고시원이다. 전에 살던 고시원은 해당 지역이 개발되면서 최근 밀려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조씨 아버지는 “얼마 전 아들이 다른 고시원으로 옮겨야 한다고만 했다”고 말했다. 결국 아들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아버지는 아들이 살던 고시원을 찾아왔다. 그는 “돈이라도 많았으면 아파트라도 한 채 사주든지 전세를 구해준다든지 했을 텐데 나 먹고 살기도 힘든 처지”라며 “우리 아들은 발버둥을 친 것”이라고 통곡했다.

조씨 아버지는 사고 전날(8일) 아들과 나눈 마지막 통화를 떠올렸다. 힘들게 살아가는 아들에게 하필 결혼 얘기를 꺼낸 게 못내 죄스럽다. “수줍음이 많고 거짓말도 할 줄 모르는 아들에게 여자한테 얘기할 땐 쾌활하게 하라고 했다. 갑자기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자식을 가슴 속에 묻는다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는 이번 사고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당부했다. 그는 “아들이 다니던 우체국에서도 너무 열심히 일하던 친구가 연락도 없이 안 나오니까. 유일하게 연락처를 알고 있던 처남에게 바로 전화했다고 하더라”라며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 모두 조금이라도 절약하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다. 어느 고시원이든지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작권 한국일보] 국일고시원 화재 신고 내용. 그래픽=송정근 기자

조씨 포함, 7명의 안타까운 목숨을 앗아간 화재 당시의 긴박한 상황도 이날 공개됐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홍철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소방당국으로부터 제출 받은 119신고 녹취록에 따르면, 오전 5시 최초 신고에 이어 여러 건이 잇따라 접수됐다. 신고 내용을 보면 불은 이미 건물 3층 전체를 태우고 있었다. 한 신고자는 “죽어요. 죽어요. 지금 아예 못 나와요. 불이 싹 번졌어요”라고 절규했다.

대피는 쉽지 않았다.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계단은 불길에 막혔다. 신고에는 “사람들이 계단을 이용하지 못하고 창문으로 뛰어 내린다, 밧줄을 타고 내려온다” “위(3층)에서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소리지른다” “옥상으로 가는 계단 자체가 완전히 다 죽었다” 등 당시 긴박했던 상황이 고스란히 담겼다.

일부 신고자가 3층 고시원을 ‘4층’이라 신고해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1층이 불법 ‘복층’ 구조라 4층짜리 건물인 줄 착각한 것이다. “4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먼저 받은 119신고 접수자는 “3층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에 재차 “4층짜리 건물이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사고 사흘째인 11일 국일고시원 화재 현장에는 추모 발걸음이 이어졌다. 고시원 앞에 놓인 테이블에는 꽃과 음료수, 귤 등 선물이 쌓였다. '쪽방, 고시원, 여인숙…. 반복되는 빈곤층 주거지 화재 참사의 재발 방지 촉구합니다' '부동산정책 말고 주거권 정책이 필요합니다' 등이 적힌 종이도 놓여있었다. 이날 오후 현장을 찾은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우리나라 빈곤층의 주거 문제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라며 “자기 한 몸 누일 곳 없이 종일 일하는 고시촌 사람들의 주거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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