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일고시원 화재 경보장치 두종류나 있었는데…

입력
2018.11.11 20:00
수정
2018.11.11 21:26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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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방 감지기ㆍ3층 자동 탐지기 안 울려 “고장 또는 차단”

고시원 거주했던 소방업체 직원 “경보 오작동해 아예 꺼놔”

9일 오전 화재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에서 경찰 및 소방 관계자들이 감식을 벌이고 있다. 서재훈 기자
9일 오전 화재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에서 경찰 및 소방 관계자들이 감식을 벌이고 있다. 서재훈 기자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에는 알려진 것과 달리 화재 경보장치가 두 종류나 설치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화재 당시 제대로 작동했다면 아까운 생명을 더 구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경찰도 소방당국이 확인해준 이들 경보장치가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에 나섰다.

소방청은 9일 화재가 발생한 국일고시원 각 방에 단독경보형감지기(단독감지기), 3층 계단 옆에 자동화재탐지설비(자동탐지기)가 설치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단독감지기는 특정 공간(방)에 화재가 나면 알람이 울리는 기기이고, 자동탐지기는 화재 초기 발생하는 열과 연기 등을 자동 감지한 뒤 해당 공간뿐 아니라 수신기가 달린 여러 곳(건물전체)에 사이렌과 벨을 울리는 기기다.

그러나 경찰은 발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301호에서도(단독감지기), 건물 어디에서도(자동탐지기) 경보는 없었다는 진술을 다수 확보했을 뿐이다. 이에 따라 이들 기기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는지, 고장이 났는지, 누군가에 의해 고의로 차단됐는지 등을 밝혀야 한다.

특히 자동탐지기의 경우 열 감지기는 작동했으나 수신기가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고시원 거주자 대다수는 대피 당시 “화재 경보를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만일 수신기가 정상 작동했다면, 화재 직후 건물 전체에 동시다발적으로 사이렌이 울려 빠른 대피가 이뤄졌을 수도 있다.

자동탐지기를 누군가 꺼놓았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국일고시원에서 5년간 살다가 최근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는 소방시설업체 직원 A(56)씨는 “과거 자동탐지기의 열 감지기 고장으로 ‘화재’ 표시가 수신장치에 계속 떠 있었는데, 별다른 조치를 안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라며 “경보 벨이 계속 울리니 아예 꺼놨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2015년과 지난해 소방당국의 국일고시원 소방설비검사에서 자동탐지기 등은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탐지가 수신기가 발화점인 3층 출입구 인근에 설치돼 있었기 때문에 화재로 인한 고장 가능성도 존재한다.

소방당국은 2007년 건물 2, 3층을 고시원으로 개조하면서 고시원 관리인이 자진해서 자동탐지기를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국일고시원은 단독감지기만 설치 의무대상이었다. 소방청 관계자는 “고시원 관리인이 안전을 위해 단독감지기와 더불어 자동탐지기까지 설치한 것 같다”라며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간이스프링클러 설치 사업도 고시원 관리인이 직접 신청해 선정까지 됐으나, 건물주가 거부했다”고 말했다. 건물은 하모(78) 한국백신 회장과 동생(68)의 공동소유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백신은 최근 비소가 검출된 일본산 도장형(경피용) 결핵예방(BCG) 백신의 한국 수입회사다.

종로경찰서는 화재 원인과 더불어 건물주와 관리인의 소방시설법 위반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합동감식을 통해 확보한 증거를 토대로 조만간 관계자 소환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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