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런 극한 형벌을…”종로 고시원 재발방지 촉구

입력
2018.11.1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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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화재가 발생한 종로구 관수동 화재현장 앞에서 10일 오전 시민단체 사람들이 추모의 헌화를 하고 있다. 한소범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화재가 발생한 종로구 관수동 화재현장 앞에서 10일 오전 시민단체 사람들이 추모의 헌화를 하고 있다. 한소범 기자

“가난해도 인간답고 안전한 집에서 살 수 있는 주거권이 보장돼야 합니다”

9일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에 대해 주거권네트워크ㆍ민달팽이 유니온ㆍ빈곤사회연대ㆍ참여연대 등 주거ㆍ빈곤ㆍ종교ㆍ시민단체 19곳이 화재 현장 앞에서 참사 희생자 추모 및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10일 가졌다. 단체는 전날 화재에 대해 “단순한 화재사고가 아닌 구멍 뚫린 주거복지와 안전망이 부른 참사”라고 주장하며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주거빈곤층의 거주시설에 대한 화재 안전점검과 함께 공공임대주택을 포함한 사회안전망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박동수 서울세입자협회 대표는 “가난하면 감옥의 독방보다 작은 한 두 평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고, 타워팰리스보다 더 비싼 평당 임대료를 지불해야 하고, 폭염에 그대로 노출돼야 하고,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도 못하고, 불이 나면 희생될 수밖에 없다”면서 “왜 가난한 사람은 이런 극한 형벌을 받아야 하는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거주 지속성을 보장하는 다양한 공공임대주택과 비영리 사회주택을 늘려 주택을 수익창출이나 경기부양을 위한 조절수단이 아닌 개인의 삶의 보금자리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고시원에서 살고 있다는 주거 당사자 김바울씨 역시 마이크를 잡고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 어렵게,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이라며 “이런 어려운 사람들도 집다운 집에서 살 수 있도록 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목숨을 위협받지 않아도 되는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작권 한국일보]전날 화재가 발생한 종로구 관수동 고시원 현장에서 10일 오전 시민단체가 희생자 추모와 재발방지 대책수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소범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전날 화재가 발생한 종로구 관수동 고시원 현장에서 10일 오전 시민단체가 희생자 추모와 재발방지 대책수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소범 기자

정부가 고시원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윤지민 종로주거복지센터 팀장은 “종로구의 고시원만 해도 인근의 남대문, 동대문 시장의 일용직 생활자 분들의 생활터전이고, 우리 사회의 가장 가난한 분들이 오는 곳”이라며 “고시원 역시 사실상 주거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을 정부가 인정하고 고시원 생활자들이 최저 주거기준에 미달되지 않도록 돌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역시 “지금까지 홈리스들을 거리 노숙에서 벗어나 이런 쪽방이나 고시원으로 들어가도록 돕는 사업을 해왔는데, 과연 그것이 복지지원이었는지 아니면 더 큰 위험으로 밀어넣는 일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전날 경찰이 화재 원인으로 지목한 전열기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301호 거주자 박모(72)씨의 과실책임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고시원이나 여인숙 같은 곳은 겨울에 난방이 열악하다 보니 전열기구를 사용하게 되는데, 그 이유로 화재의 책임을 모두 뒤집어쓰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면서 “이번 사고는 잘못된 법제의 문제지 누구 책임이 더 큰지 따질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단체는 기자회견이 끝나고 화재현장 앞에서 헌화와 묵념을 하는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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