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송달 이유로 징용판결 지연, 차한성 전 대법관이 구체방안 제시”

입력
2018.11.09 17:33
수정
2018.11.09 23:5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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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성 전 법원행정처 처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차한성 전 법원행정처 처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사법농단 의혹 수사 착수 후 전직 대법관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사실이 9일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날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차한성 당시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지난 7일 비공개 소환 조사했다고 밝혔다. 이번 수사에서 대법관 출신이 피의자로 소환 조사를 받기는 처음이다.

양 전 대법원장(2011년 9월~2017년 9월) 시절인 2011년 10월부터 2014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장으로 근무한 차 전 대법관은 2013년 12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을 두고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을 방문, 박근혜 정부 입맛에 맞춰 소송을 지연하는데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당시 대법원이 청와대 요구에 응하는 대가로 중단됐던 법관의 해외 파견을 요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김 전 실장이 2013년 12월 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비서실장 공관에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과 차 전 대법관을 불러들여 강제징용 재판 확정 판결을 최대한 지연시켜야 한다고 요구한 정황을 포착했다. 김 전 실장은 2012년 5월 일본 전범기업 배상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소부 판단이 하급심을 거쳐 최종 확정될 경우 일본 측에서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을 기반으로 한 양국 간 체제가 흔들린다는 명분을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회동에서 차 전 대법관은 “국외송달을 이유로 재판을 지연할 수 있다”는 등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차 전 대법관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당시 청와대로부터 강제징용 소송 연기 요구를 받은 사실을 부인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위한 재단 설립을 논의한 사실도 인정했다. 검찰은 당시 논의 결과대로 일제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설립ㆍ운영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앞서 압수수색과 임의제출 등으로 확보한 외교부ㆍ법원행정처 문건 등 증거자료와 관계자 진술을 근거로 박근혜 청와대와 양승태 사법부가 사전교감한 정황도 포착했다. 문건에는 해당 재판을 전원합의체로 재배당해 최종 판단을 최대한 지연시키고, 그 동안 피해자들을 위한 공익재단을 설립하는 등 대응방안 검토 내용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10월 후임 법원행정처장인 박병대 전 대법관과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 등이 참석한 2차 공관 회동에서도 이 재단 관련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검찰은 의심하고 있다.

재판 거래 등 사법행정권 남용 관여 의혹을 받고 있는 박병대ㆍ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 등 전ㆍ현직 대법관들에 대한 검찰의 소환 조사도 초읽기에 들어간 분위기다. 사법농단 의혹의 최정점에 있는 양 전 대법원장도 이르면 이달 내 검찰에 불려나올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검찰은 실무책임자 격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다음주 중 구속기소할 방침이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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